결심을 실천하지 못하하는 까닭은. / 요 13:36-38.
묵상자료 4334호 (2013. 3. 29. 금요일).
시편 시 80:1-3.
찬송 9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의 시작은 모두 설렘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강물에 비친 예쁜 꽃 한 송이가 강물이 출렁일 때마다 두근거리는 모습이지요. 그렇게 꽃 한 송이 강물의 출렁임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시작이란 설렘으로 인해서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펼쳐질 수 있고, 나의 운명을 술렁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곧 천지간에 피어날 꽃으로 술렁일 봄날처럼 말이지요. 생각해 보면 봄날이란 꽃씨의 설렘에서 시작됐습니다. “엄마, 깨진 무릎에 생긴 피딱지 좀 보세요. 까맣고 단단한 것이 꼭 잘 여문 꽃씨 같애요. 한번 만져보세요. 그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는지 자꾸 근질근질해요. 새 움이 트려나봐요.” 신 영건 시인의 <봄날>이라는 동시였는데요. 상처의 피딱지를 잘 여문 꽃씨에 비유하다니 참 신선하지요? 설렘이라는 감정은 상처에 피딱지가 아물 때 근질근질한 그 느낌처럼, 언제나 간질간질 두근두근합니다. 넘어져서 피가 나고 아팠던 기억은 모두 뒤로 물러가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움이 트고 꽃이 필 것 같은 예감, 바로 그것이 설렘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웠던 설렘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가슴에 그리움이 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1년 3월 2일 방송>
2. 결심하는 것과 그 결심을 실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결심하는 데까지는 크게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가볍게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가볍지 않은 삶의 현실 앞에서 실천은 꿈도 꿔보지 못하고 접어버리기 일수입니다. 그래서 늘 충실하지 못한 삶, 곧 하다가 마는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리라 결심했습니다. 그게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진 것은 초라할지라도 주님 때문에 풍성했습니다. 배가 고프면 주님께서 먹을 것을 마련해 주셨고,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나도 언제나 주님은 거뜬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일은 언제나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삶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태도를 갖는 것 같습니다.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베드로는 많이 불쾌했을 것입니다. “나를 뭘로 보시고?” 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결과는 주님의 말씀대로 이뤄졌습니다. 베드로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베드로가 알고 있는 자기 자신이란, 이기심으로 뭉쳐있는 자기였고, 도도히 흐르는 물결 앞에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매몰되기 쉬운 자기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문제 중의 문제는 위대한 삶을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신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믿음 없음이었습니다. 바로 그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으면서도 말입니다. 결심을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단단한 의지나 구체적인 실천과정을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사랑과 격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하면서 친히 멘토가 되시기를 자원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배후에 계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3. 성금요일 예배는 어둠의 예배(Tenebrae)나 가상칠언(架上七言)을 묵상하는 예배가 적합합니다. 의미 있고 풍성한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