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다른 대답에 대하여. / 눅 5:27-39.
묵상자료 4356호 (2013. 4. 20. 토요일).
시편 시 86:1-5.
찬송 52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에게 좋은 일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가진 거라곤 몸에 걸친 허름한 옷과 단 돈 3만원이 전부였지요. 배가 고팠지만 3만원을 아끼고 싶어서 아무 것도 사 먹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몸, 길가에 쭈그리고 앉았는데 한 소녀가 다가왔습니다. “할아버지 저한테 500원이 있는데 받아주시겠어요?” 자존심이 상해서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누가 너한테 돈 같은 거 달라고 했어?” 소녀는 물러나지 않고 간절하게 애원합니다. “제발 받아 주세요. 이거 아주 중요한 일이예요. 동생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500원 밖에 없어서 동생이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사 줄 수가 없어요.” 돈을 보태달라고 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도리어 가진 돈을 주겠다니, 무슨 사연일까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거든요. 남에게 좋은 일을 하면 그보다 몇 배 좋은 일이 생긴다고요. 그래서 이 500원을 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받는 거야 무엇이 어려울까요. 500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소녀에게 눈을 꼭 감으라고 말했지요. 소녀가 눈을 떴을 때, 손바닥에는 3만원이 놓여 있었고, 아까 그 무서운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소녀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모퉁이에선 이 모습을 지켜본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남에게 좋은 일을 하면, 그 보다 몇 배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을,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믿지 않았을까 하고. 아마도 이제 곧 그에게 좋은 일이 생길 모양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4월 18일 방송>
2.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정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해당되는 일일 것입니다. 요즘 한 장관청문회에서 자질 논란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던 인사를 결국 대통령이 임명하였는데, 앞으로 갈 길이 험난해 보입니다. 이런 얘기는 2천 년 전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세리 레위의 제자 소명은 열성적인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기름에 불을 끼얹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세리라는 때문이었습니다. 예전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으로 순사노릇을 한 이들이 있었는데, 자기 민족을 괴롭히는 일을 해야 했으니, 그 또한 힘들기는 매 한가지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기록이나 영화를 보면, 조선인으로 순사나 판사를 했던 이들이 더 악랄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양다리를 걸친 상황에서 그 방법 외에는 달리 처세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세리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기대 밖의 내용이었는데,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는 대답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의인이 어디에 있을까만, 자칭 의인이 너무 많았다는 점을 빗댄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의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 말씀이라고 말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바리새인이나 요한의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의 제자들은 전혀 금식과 기도에는 마음이 없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또한 전혀 예상 밖이라는 점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합니다. 바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론을 말씀하신 때문입니다. 이미 발효된 익은 포도주는 부대가 낡아도 무방하지만, 새 포도주를 담기에 낡은 부대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 신랑 새 신부의 신혼시절을 무엇으로 흔들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기대 밖의 대답이나, 예상 밖의 대답에 새삼 차원이 다른 생각의 깊이를 가늠하게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