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불가능에 도전하라 하십니다. / 눅 6:27-38.

박성완 2019. 5. 19. 01:28

묵상자료 4360(2013. 4. 24. 수요일).

시편 시 87:1-3.

찬송 8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독서실 책상을 갖고 싶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냥 책상도 아니고 독서실 책상이라니. 대입 시험이나 취업시험을 다시 치를 것도 아니면서, 양쪽으로 높이 칸막이 쳐진 그 답답한 책상이 왜 필요할까 실었습니다. 그런데 기어코 방 한 구석에 독서실 책상을 들여 놓더니 선언합니다. “지금부터 여기가 내 아지트야.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엔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기야.” 양쪽 칸막이 사에 달린 커튼을 치곤,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는 그렇게 여기에서 사라져 아지트로 가버렸습니다. 아지트라고 하면 자고로 비합법적으로 활동을 하거나 도모하는 장소를 뜻하는데, 대체 그곳에서 뭘 하고 싶은 걸까요? 남편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그냥 나이고 싶을 때도 있고, 아내도 엄마도 아닌 그냥 나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속 바람자체가 마치 비합법적인 활동을 도모하는 것 같아서, 선뜻 감행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만약에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면, 그냥 떠올리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거나,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라니. 참 얼마나 기쁘고 평화로운 곳인가요. 누구에게나 사실은 자신만의 아지트가 필요합니다. 일부러 돈을 들이거나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되지요. 공원의 벤치, 뒷산 숲속, 도서관 창가도 아지트 삼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제각각 돌아다녔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만나 하나가 되어서 서로 꼭 끌어안는 걸 느낍니다. 비로소 내가 나입니다. 세상이 사람들이, 전보다 한결 고와 보입니다. 다시 최선을 다하고 싶어집니다. 이제 아지트에서 나올 때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417일 방송>

 

2.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과연 이런 예수님의 설교가 당시의 갈릴리 사람들이나, 현대의 우리들에게 가당키나 한 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들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시, 미워하는 자에게 잘 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을 주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니 말입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비판하지 말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나님처럼 자비하라고 하십니다. 만일 제가 그 설교를 듣고 있었다면, 어쩌면 소리를 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그렇게 할 사람이 있을까요?”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귀를 막으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씀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지금도 누군가는 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눈을 제대로 뜨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위대한 사람을 찾아내려면 말입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그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한 번도 절 보고 나는 널 믿는다.” “나는 널 사랑한다.”는 등의 말씀을 해 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친구 분들에게, 수도 없이 많은 말씀을 들었는데,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시험에 7차례나 줄지어 낙방했을 때에도, 언젠가 틀림없이 저의 길을 갈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입니다. 어머니는 어떻고 형제와 자매들은 어떻습니까? 표현하는 때와 장소가 적절치 않아서 감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보면 얼마나 위대한 삶을 살고 있는지, 오직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끝없이 기다려주고, 참아주며, 넘치도록 사랑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입니다. 이것을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 때 힘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