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왜 그랬을까? / 눅 7:36-50.

박성완 2019. 5. 19. 01:35

묵상자료 4365(2013. 4. 29. 월요일).

시편 시 88:11-13.

찬송 41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길거리에서 비스킷을 먹다가, 그만 한 개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와서 번갈아가며 쪼아댑니다. 하지만 커다란 비스킷은 쉽게 부셔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의 힘으로는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나는 먹을 수 없는 것 하면서, 비스킷을 발로 밟아서 잘게 부셔주었습니다. 둘이서 사이좋게 나눠 먹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덩치 큰 비둘기가 부스러기 위에 두 다리로 떡 버티고 서 버립니다. 덩치 작은 비둘기가 먹을라치면, 홰를 쳐 댑니다. 그 모습 살벌합니다. 일을 벌여놓은 당사자로써, 이런 사태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먹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만 먹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하면서, 작은 비둘기도 한쪽에서 먹을 수 있도록 과자를 넓게 흩어 놨습니다. 그러자 큰 비둘기가 아까보다 날개를 더 크게 펴고선 왔다 갔다 하면, 작은 비둘기가 이쪽도 저쪽도 다 못 먹게 방해를 합니다. 그렇게 두 마리가 쫓고 쫓기는 사이, 어디선가 제3의 비둘기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비둘기가 마음 놓고 다 먹어치웠습니다. 나눠서 내 것이 적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지 않아서 나의 것도 적어집니다. 나누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있습니다. 나누지 않으면 도둑맞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425일 방송>

 

2.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부은 300데나리온(로마 화폐 단위로 1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의 품삯정도)을 깨트린 일화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리새인은, “무슨 짓을 하느냐?” 꾸중하기는커녕 하는 대로 두고 보는 예수님을 진짜 선지자가 아니구나!”라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그걸 팔아 그 값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줄 수 있는데 라며, 대 놓고 그 여인을 책망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14:5). 요즘은 성전을 짓는 일에 옥합을 깨트리라고 주문하기도 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 옥합을 깨트리라고 외치기도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이 사건에 대한 주님의 해석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죄로부터 용서받은 기쁨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를 말씀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단순히 값비싼 향유를 일순간에 허비해 버리는 어리석음이나, 그 값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렇게 다른 이해, 다른 해석이 가능할까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문제를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라는 본질에 대한 질문보다는, 어떻게 그런 일을? 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주목하는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근본이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해득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정치 철이 되면 줄서기에 바쁜 무리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본질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훗날 그 일이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한 일인지 들어난다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질문할 내용입니다. 왜 그랬을까? 꼭 그럴 수밖에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3. 지난 토요일 일본 교회 초청을 받은 저의 교우가 얘기를 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제가 일본에 간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뜻이거나, 첫 구절만 읽고 단정해 버리는 성급함이겠지요. 놀라운 것은 박사논문을 쓰는 분도, 예리한 설교를 하시는 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