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깨달음 없는 앎을 자랑하지 말기를. / 눅 8:1-15.

박성완 2019. 5. 19. 01:37

묵상자료 4366(2013. 4. 30. 화요일).

시편 시 88:14-18.

찬송 4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옆집 사람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인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어떤 사람들인지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강아지를 키웁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댑니다. 가끔 경찰서에 신고하고 싶은 충동마저 느낍니다.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확실히 들리지 않지만, 한 두어 달에 한 번씩 부부싸움으로 추정되는 고성이 오고갑니다. 아내는 직장인입니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각에 구두 소리가 요란합니다. 조금만 일찍 일어나면 저렇게 뛰지 않아도 될 텐데 생각합니다. 아내가 출근 한 후에는 아이가 하교에 갑니다. 현관문을 열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는데, 늘 학교가기 지루해 하는 목소리입니다. “그래 잘 다녀와.” 하고 아이를 마중하는 건 남편입니다. 실업자인지 프리랜서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취미생활은 압니다. 볼륨 크게 해 놓고 텔레비전 보기. 한 낮에도 TV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옵니다. 그렇게 똑 같은 소음이 매일 반복적으로 들립니다. 존 케이지의 <433>3악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는 이 소리 없는 음악을 심지어 악보로 만들어 팔기까지 했지요.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연주입니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내는 소리만 들으면 되니까요.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을 하거나, 소음을 낼 때면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존 케이지의 <433>를 연주하는 중이라고. 음악이 정적과 소리로 이루어지듯이, 우리의 세상살이 또한 그런 거라고.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412일 방송>

 

2.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복음의 뜻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빗대어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씨 뿌리는 농부> 비유를 해석하시면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말씀(10)을 하시는데, 목에 가시가 턱 걸리고 맙니다. 잘 알고 있는 얘기들일 테니 훨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를 말씀하신다니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앞뒤가 맞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는 것 혹은 이해하는 것과 깨닫는 것이 얼마나 다른 지를 구별 짓는 말씀이 아닐까요? 오히려 깨달음 없는 앎이란 오히려 더 큰 비극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말일지도요.

   팔레스타인에서 씨 뿌리는 관습은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먼저 씨를 뿌리고 그 다음에 흙을 덮는 방식인데, 그래서 자갈밭이나 가시덤불 그리고 옥토 등에서 씨가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우리 주님 주변에서는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중 대부분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 모릅니다. 참된 열매는 어디에서 자라는가? 마른 땅도 자갈밭도 가시덤불 속도 아니라, 옥토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옥토에 관심을 쏟아야 마땅할 텐데도 사람들은 옥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옥토란 또 어떤 곳일까요? 우리가 신중하게 물어야 할 말입니다. 옥토란 말씀을 새겨듣는 사람이며,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의 묵상은 말씀을 곱씹어 보며 사는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너무 잘 아는 것들이어서 오히려 그 참 뜻을 깨우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