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제 값을 나타내기 위하여. / 눅 8:40-56.
묵상자료 4369호 (2013. 5. 3. 금요일).
시편 시 89:7-10.
찬송 37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라니까요.” 후배가 애절한 표정으로 거듭 자신의 진실성을 강조하는데, 어쩐 일인지 자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 후배는 아까 이렇게 말했거든요. “선배, 그 말이 정말이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후광이 비치고 종이 울린다는 그 말이요.” 정말이라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두 눈에 너무도 선명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기해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말이 정말이었습니다. 사람의 눈동자에 별이 뜬다는 그 말. 그건 아무리 억지로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세상에 몇 가지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눈동자에 별이 뜬 사람은 결코 외면할 수 없습니다. 강력한 진심의 힘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눈동자에 뜨는 별은 한편으로는 초심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도 있었어요. 휴학생활이 힘들어서 포기하기로 결심했을 즈음, 막 도착한 유학생을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신입생의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그 눈동자를 보고, 돌아와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어린 유학생에게서 자신의 옛날 모습을 보았던 거지요. 자신에게 그토록 설렘과 기대를 주었던 것을, 포기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고, 다시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별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건 기적입니다. 그로 인해서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처럼 내 눈동자에 별이 뜨고, 그 별이 누군가에게 또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4월 26일 방송>
2. 본문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화와,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잡으면 낳을 것 같은 생각으로 만졌다가 고침을 받았다는 일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거듭 되풀이 되는 얘기입니다만, 성경 안에는 그 고치기 어렵다는 난치병들이 말씀 한 마디로 고침을 받는 신비한 이야기들을 취급하고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언제나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어딘지 귀신과 내통하는 미신적인 행위로 홀대하려는 유대인 지도자들과, 또 다른 하나는 거의 무조건적인 반응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면서 영광을 돌리는 일반인들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쪽도 치유의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왜? 혹은 어떻게 이런 일이 예수님에게만 가능한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먼저 열 두해를 혈루증(피가 멎지 않는 질환)으로 고생하는 여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낫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이를 아시고 누가 내게 손을 대느냐고 물으셨고, 그 물음의 뜻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밀치는 현상을 알려주고 있는 베드로의 생각 없는 대답이 나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을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치유사실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 다음에 회당장의 딸에 대해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셨으나,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을 때 이미 죽어 곡소리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 하시니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생명이 무엇인가? 왜 그리고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가? 등에 대한 물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나, 오래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 저는 본문에서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분이 주신 생명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임을 깨닫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생명은 그저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제 값을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일 테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3. 오늘은 루터대학교에서 회의를 가지는데, 하루를 다 허비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