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무엇이며, 왜 드리는 것입니까? / 눅 9:37-50.
묵상자료 4377호 (2013. 5. 11. 토요일).
시편 시 89:42-45.
찬송 47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공책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뭘 그렇게 열심히 쓰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대답합니다. “엄마에게 청구할 돈을 계산하고 있었어요.” 엄마가 궁금하다면서 “어디 한번 보자.” 라고 말하자, 아이는 지금 막 계산이 끝났다면서 공책을 보여 주었습니다. 계산서였습니다. 우유 가져오기 세 번 300원, 식탁 차리기 4번 400원, 빨래개기 한번 100원, 커피 타기 두 번 200원, 합계 총 1,000원. 엄마는 제법 꼼꼼하게 작성한 청구서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엄마가 청구서를 작성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두 눈이 커다래지면서 물었습니다. “맙소사. 엄마가 저한테 용돈을 타시려고요?”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구서를 써 내려갔습니다. 8년 동안 식사 제공 0원, 수없이 많은 설거지와 빨래 0원, 아플 때 병간호 0원, 숙제 도와준 것 온갖 시중들기 0원. 합계 0원.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올까봐 긴장했던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는 왜 0원이라고 적으셨어요?” 엄마가 말합니다. “왜냐면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무엇이든 주고 싶어 서지. 그렇지만 네가 청구한 1,000원은 줄게.” 엄마는 아이에게 돈을 주기 위해서 지갑을 찾으러 일어섭니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습니다. “아니요 엄마, 저도 엄마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요.” 많은 것을 주면서도 청구서에 0원으로 적고, 많은 걸 받으면서도 0원으로 여기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사이. 부모와 자식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5월 8일 방송>
2. 오늘 본문의 첫 부분, 간질병 환자를 고친 일화는 공관복음서 모두 취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마 17:14-21, 막 9:14-29, 눅 9:37-43). 주님과 제자들의 차이를 인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그 차이 있음을 화를 내고 계십니다. 무력한 제자들을 부끄럽게 말하며 다가온 병든 자식을 둔 아비가 있었습니다. 이런 표현은 지금도 사용되는 화법인데, 다소간 아첨기가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고칠 수 있는데, 주님의 제자들은 왜 고치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까? 본문과 마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반해, 마가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한 후에 제자들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마가복음에서 만 있는 것으로, 한국 교회로 하여금 기도 만능주의를 가르치는데 적지 않게 공헌한 구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기도의 위력에 대해서 열광하기 전에, 기도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가 무엇인가를 말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기도와 일반인들 혹은 다른 모든 종교인들이 말하는 기도와의 차별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절대자인 신에게 아뢰는 마음 속 소원이라고 하는 데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일반인들의 기도는 열심히 끈질기게 기도하는 공력을 들이게 되면, 그 결과물로 소원이 성취될 수 있다는 공로주의가 잠복해 있다고 하겠습니다. 설령 기도를 들어주는 분이 절대자가 아니라고 해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계속 반복하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소원을 이루는 방향으로 살게 되고,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가르치는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일입니다. 기도자의 소원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말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기도의 소원이 꼭 성취하는 것만이 기도하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까닭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더 복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소원성취를 목적으로 기도해 왔는지 모릅니다. 주님께 맡기는 자세가 전혀 없이 말입니다.
3. 묵상식구이며 저의 제자인 현재은 선생이 둘째 아이를 가졌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사랑스런 아이를 순산하기를 기도합 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