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2. 부활절 일곱째 주일]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주님. / 요 17:20-26.
묵상자료 4378호.
시편 시 89:46-48.
찬송 51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가로 세로 30cm 깊이 60cm 정도 되는 나무통에다가 밀을 하나를 심고 싹이 트고 열매가 달리기를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나무통을 부수고 나서 뿌리가 얼마나 뻗어갔는지 재어 봤는데요. 그 길이는 총 11,200km, 그러니까 서울 부산을 열네 번 정도 왕복할 만한 기리였다고 합니다. 전자 현미경을 동원해서 찾아보니까 그 정도 길이가 그 좁은 통 안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양분을 찾기 위해서 구석구석 죽을 힘을 다해서 뿌리를 뻗어야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밀 한 톨이 살아남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는 과정, 좁은 상자 같은 부족한 환경 속에서 뿌리를 내고 또 뻗는 과정.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곳곳에서 이렇게 조용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 아닐까 싶습니다. <KBS FM 1, 풍류마을, 2013년 5월 2일 방송>
2.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써 기본덕목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명령이며 장수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의 복음서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하신 가장 긴 기도로,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우리들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20-22절).
하나라는 용어는 자주 혼란을 주는 말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우선 둘이나 셋이 아닌 딱 하나 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절대로 다를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용어는 군대 사회에 어울립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하나는 좀 더 큰 의미입니다. 가족은 하나라고 할 때, 교회는 하나라고 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격도 모습도 말씨도 삶의 목적도 다르지만, 낯설어 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어우러짐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이런 조화로운 어울림 속에서 살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달라야 하고, 활동이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모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바로 성부와 성자 성령이신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이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다르면서도 하나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너그럽기를 바라십니다(23-26절).
함께 살아가는 일은 피곤하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제 아내 말을 빌리면 “시”자가 붙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시댁 사람들은 모든 게 간섭자 같아 보이고, 귀찮은 존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친정 식구들은 만만하고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편견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예의를 차리고 긴장한다는 것이 꼭 부정적인 뜻으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시댁이건 친정이건 사실은 조심스럽게 정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를 존중하거나 배려해 주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다른 점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때 세상은 평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배려하는 이해심을 키워야 합니다(요 13:34-35).
제가 자주 사용하는 예화 가운데 어느 훌륭한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전혀 다른 세 가지 생각을 모두 받아들이게 된 내용입니다. 이해라는 말은 그처럼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들도 정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해하려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또한 남을 이해하는 것이란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해심 때문에 그 사람은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머니의 청구서>를 읽으셨습니다.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 아이처럼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한 일을 하나하나 계산하려고 합니다. 어느 어머니는 우유가 아니라 모유를 먹였다며 유세를 떨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어머니 맞아? 며느리 맞아? 아들 맞아? 되물어 봤으면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