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거부당하신 예수님. / 눅 9:51-62.
묵상자료 4379호 (2013. 5. 13. 월요일).
시편 시 89:50-52.
찬송 14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헬스클럽에는 눈에 띄게 열심히 운동을 하는 분, 그래서 그곳에서 제일 두드러지게 근육질을 자랑하시는 분이 두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분 다 손주들이 있는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분들입니다. 60대 후반쯤의 연세에 자수성가 했다는 공통점도 가지셨지요. 물론 두 분 다 건강을 생각해서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건강을 하게 된 사연만큼은 정 반대입니다. 첫 번째 할아버지는 2년 전 혈압 때문에 두 번이나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입원을 하셨지요. 7달이 넘는 장기입원이었습니다. 병간호에 가족들도 지쳤다고 할까요? 하지만 지쳤다고 하기엔 너무 빨랐습니다. 한 달여 만에 벌써 다들 오는 둥 마는 둥 했으니까요. 물론 3남매 모두 다 바쁜 나이이고 바쁜 시기인 줄은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어떻게 키웠는데. 일찍 아내를 여의고 난 뒤에도 아이들 생각해서 재혼도 안했지요. 그리곤 3남매를 혼자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파 누웠다고 이렇게 소홀하다니, 무척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7개월여 만에 병원에서 나온 뒤 즉시 운동부터 시작했습니다. 거의 운동선수에 버금가게 열심히 했습니다. 아프면 자신만 서글플 뿐이라고 생각해서였지요. 그리고 그동안 당연히 아들딸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유산을, 이제부터는 자신과 다른 주위 사람들을 위해 쓰고 베풀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그 할아버지는 가족들한테 너무 섭섭해서, 이제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자신만의 인생을 사시겠다는 결심으로 그토록 열심히 운동을 해서, 근육질의 할아버지가 되셨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년 2월 22일 방송>a.
2. “죽기도 참 힘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쉽게 살려는 이들이 선택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죽을힘으로 살아보라.”고도 말합니다. 물론 제 생각과는 상반되는 의미가 되겠지요. 어느 쪽이든 나름대로 진정성이 있는 말일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네 삶은 다양하고 복잡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결심하시고”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이 승천예고를 말씀하고 있는 것은 누가복음서 기자의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한사코 예수님의 일행이 사마리아를 지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회 도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화가 난 제자들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멸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고 묻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한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결연한 행보라고 한다면, 그의 제자들은 주님의 길을 막아서는 사마리안 사람들을 불로 다 태워죽이려는 기세등등한 모습이니 말입니다.
오늘 저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예수님마저도 배척을 받으셨다는 점이 크게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서 적대감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래 전에 앗수르가 점령했을 때, 그들의 자녀들과 통혼을 하는 잘못을 저지른 후로,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았고, 상종 못할 인종으로 모든 관계가 끊어진 사이입니다. 그러나 주님과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진 관계로도 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 주님은 철저하게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받으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즘 말로하면 왕따를 당하신 것입니다. 저 역시 한 때 그런 세상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고매하다고 소문난 장로님이 제게 당시의 저에 대한 세평을 전한다면서, 그런 말을 전해 주셨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목사님은 가르친 제자나 후배들로부터 인기가 아주 없다고 들었습니다.”는 말이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인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았으니 말입니다. 제가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