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선언의 목적. / 눅 11:37-52.
묵상자료 4387호 (2013. 5. 21. 화요일).
시편 시 91:13-16.
찬송 20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외로워하는 어머니를 보다 못한 딸이요, 그녀에게 카메라를 하나 선물했습니다. 이런 글귀와 함께 이었지요. “고독한 시간에 엄마가 사진을 찍는다면 그것이 엄마를 즐겁게 할 수도 있을 거야.” 49세의 케메론은 그날부터 혼자 카메라를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도 찍고, 테니슨이나 찰스 다윈 같은 유명 인사들도 찍었지요. 누구를 찍든 그녀가 생각하는 사진은 아름다움을 담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는 그녀의 기법은, 초점이 약간 빗나간 듯 찍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사진작가들에게는 기술이 부족하거나 미숙할 때 나오는 사진 현상이었는데요. 케메론에 의해서 오히려 독특하고 예술적인 사진 기법이 됐지요. 쉰 살에 뭔가를 처음 시작해서 뛰어난 예술가가 된다는 것, 정말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어렵지도 않다는 걸 케메론이 일깨워줍니다. 뭔가를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요. 요즘은 겨우 열 몇 살에, 벌써 난 너무 늦어서. 내 꿈을 이루기엔 너무 늦었어 라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늦었다는 말은 항상 너무 빠른 자포자기를 유도하는 너무 이른 말이라는 걸, 줄리아 케메론이란 이름과 함께 마음깊이 새겨둘 일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년 2월 18일 방송>b.
2. 불과 15절 밖에 안 되는 구절에서 무려 6차례나 주님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화 있을진저!” 라고 저주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삶이나 성품에 비추어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의외성을 갖는 일화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갖고 계셨던 불만이 봇물처럼 터지는 듯한 말씀처럼 들리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주 선언의 근본적인 목적은 긍정적인 데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주 기원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통해 돌아서게 하려는 충격 요법과 같은 목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주님은 마귀 노릇하는 사람들까지도 다 살려내시려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함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실상을 발견하기를 바라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른바, 전도된 가치관, 교만, 외식, 책임전가, 자비 없음, 배타성으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저주 선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회개할 기회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오늘의 기독자들에게도 일침이 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