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모독하지 않기를. / 눅 11:53-12:12.
묵상자료 4388호 (2013. 5. 22. 수요일).
시편 시 92:1-4.
찬송 17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우연치 않게 텔레비전 드라마를 함께 보게 됐습니다. 어느 중년 부부가 나오고 있었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이랬습니다. 성실하고 자상한 성격과는 영거리가 멀고, 돈 쓰는 일에는 천부적이지만, 돈 버는 일에는 한 없이 무능합니다.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아내를 살뜰히 아끼기는커녕, 온갖 타박에 구박에, 가만히 앉아서 심부름을 시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십니다. “얘, 저 드라마는 말도 안 된다. 요즘 세상에 저런 남자가 어디 있냐?” 아들이 “풋 !” 하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아들이 보기엔 드라마 속 남자가 아버지와 똑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어머니가 들어왔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과일 좀 주세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너는 어쩜 너의 아버지랑 똑 같니?” 그냥 과일만 달라고 했을 뿐인데 그런 말을 듣다니, 아들은 억울했습니다. 결코 닮고 싶지 않은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사람의 마음에는 자아와 그림자가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좋아하고 인정하는 모습은 자아가 되지만, 싫어하고 부인하는 모습은 그림자가 됩니다. 그림자는 억압된 상태로 무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의 그림자가 다른 사람에게서 보이면, 마음이 불편하고 이유 없이 그 사람이 싫어집니다. 사실은 그 모습이 바로 내 그림자, 내가 그토록 싫어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 속에 가두어놓은 내 그림잔데 말이지요.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바로 그 그림자까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5월 14일 방송>
2. 제자를 기르는 일, 이 보다 더 중요한 훈련은 없을지 모릅니다. 그 제자가 또 다른 제자들을 양육할 테니까요. 제가 선교지의 지도자 육성에 초점을 두는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따로 하신 말씀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제가 다양합니다. 외식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말씀도 있고(1-3절),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도 있으며(4-7절),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해야 할 까닭에 대해서도(8-9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을 모독 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10-12절) 하십니다. 어느 것 하나 예수님의 제자로써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될 말씀들입니다. 오늘 묵상은 성령 모독죄에 대해서 하려고 합니다.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있을까요? 그런데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어찌하여서 용서받지 못할까요? 공관복음에서 다 취급하는 말씀입니다. 우선 마태와 마가복음서 기자는 바알세불 논쟁과 관련하여 취급하는 것(마 12:31-32, 막 3:28-29) 과는 달리, 누가복음서 기자는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가. 부인하는가를 말씀하면서, 이 본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거부했다가도,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곤 합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감동감화하심을 받은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게 하거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는 성령님을 거부하거나 모독한다면, 성령님의 도움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절망적일 수 밖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성령님을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