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화평의 왕이냐, 분쟁의 왕이냐? / 눅 12:49-59.

박성완 2019. 5. 20. 00:42

묵상자료 4391(2013. 5. 25. 토요일).

시편 시 92:13-15.

찬송 47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중국 위나라에 미자하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잘 생긴 외모 덕분에 임금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밤 그 어미가 병이 났고, 연락을 받은 미자하는 급한 마음에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고 집으로 달려갔지요.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서 미자하를 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왕의 수레에 감히 발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발뒤꿈치가 잘리는 형벌을 받는 것이 국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자하를 사랑하는 왕이 말했습니다. “아픈 어머니를 걱정하느라 중벌을 받는다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니, 미자하가 얼마나 효자냐?”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미자하가 정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었는데,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습니다. 미자하를 사랑하는 왕은 칭찬했습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제가 먹을 것도 잊고 바쳤다.” .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아름답던 미자하의 용모도 빛을 잃어갔습니다.

   어느 날 왕이 화를 내면서 미자하를 끌어다 처형시키라고 했습니다. 이유인즉 이러했습니다. “미자하는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탓을 뿐만 아니라, 제가 먹던 복숭아를 감히 과인에게 먹이는 불경을 저질렀도다.” 어떻게 칭찬을 받았던 일이 이렇게 벌 받을 일이 됐을까요? 변한 마음을 탓할 수밖에요.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여도지죄<餘挑之罪> “먹고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입니다. 사랑할 때는 먹고 남은 복숭아를 줘도, 자기 먹을 것을 잊고 준다며 감격해 하더니, 사랑이 변하고 나니 먹고 남은 복숭아를 줬다며 괘씸해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일이 그처럼 무섭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510일 방송>

 

2. 주님에 대한 여러 별칭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화평의 왕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는 화해자로 세상에 오셨으니 말입니다(2:13-18, 9:6). 그런데 오늘 주님은 당신의 이미지를 구겨버리듯 분쟁의 왕으로 왔노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럴 때 얇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화평의 왕이 맞아? 분쟁의 왕이 맞아? 흑백논리 밖에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화평의 왕이면서 동시에 분쟁의 왕이시기도 합니다. 왜 그게 안 되겠어?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니 말입니다.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을 손잡게 하기 위해서는 평화의 왕으로, 굳어버린 이념과 관습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분쟁의 왕으로, 이랬다저랬다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라도 하듯, 조용한 가정이나 전통을 뒤 흔드는 바이러스 같은 정신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별칭입니다. 제가 중국 선교 중에 공안의 불심검문을 받게 된 얘기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날은 마치 무슨 운명의 날과 같았습니다. 생전 하지 않던 노래 공부를 전날 시켰었습니다. 압바(ABBA)“I have a dream”을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그 가사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미래를 꿈꾸게 한 가슴 뜨거운 분위기였는데 말입니다. 강의가 시작되자 마자 6명의 공안들이 구두를 신은 채 제 강의실을 덮쳤습니다. 죄목은 위대한 공산주의 사상을 흔드는 불순한 선동가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해석이 맞았을지 모릅니다.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분명 평온해 보이는 그들 세계에, 예수라는 새로운 스승을 바라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분쟁의 왕으로 낙인 찍혔지만, 그래서 엉뚱한 곳 내몽고의 만주리로 피신을 떠나야 했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혀 상상도 못했던 한 교회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3만 위안을 털어 새 교회 건물 잔금을 치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3. 오늘은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엘 다녀올 참입니다. 하루 종일 버스를 타게 되겠지만, 모처럼 추억여행을 떠날 것 같습니다. 7년동안 청춘을 바친 목회를 했던 부산이니까요.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