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고민하고 따를 제자의 길. / 눅 14:25-35.
묵상자료 4400호 (2013. 6. 3. 월요일).
시편 시 95:6-11.
찬송 37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난에 대해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상반된 판단을 합니다. “저렇게 게으르고 무책임하니 가난하지”, 다소 비난조의 판단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가난하다니”, 안타깝다는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박형준 시인은 40대의 중견 시인입니다. 1991년 <각오의 힘> 이라는 시로 등장해서, 가장 최근에는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라는 시집을 냈지요. 시집에는 고향집과 그곳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눈물이 곳곳에 아프게 혹은 정겹게 깃들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 고향의 아버지에 대해, 한 독자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버지는 무능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농사는 참 열심히 지으셨어요. 마당에 낙엽 하나라도 떨어지는 것을 못 보실 정도였으니까요. 아버지가 아침저녁으로 마당을 치우셔서 우리 집 마당엔 늘 빗살무늬 토기 같은 싸리비 자국이 나 있을 정도였습니다.” 시인의 감성이니까 정성껏 빗질 된 마당에서 빗살무늬 토기 같은 무늬와 자국을 봤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빗질 자국은, 다음 날에 참으로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을 들어냅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부지런한 농부이셨지만 그렇다 고해서 집안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농사가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가난해 집니다. 바로 이럴 때 가난이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가난하나니, 안타깝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가난이겠지요. 열심히 사는 사람만큼은 최소한 그 열심 정도 만이라고 나아지고 좋아졌으면 싶어집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년 3월 18일 방송>a.
2. 제자의 길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허다한 무리”들을 향한 말씀이었는데도, 인기를 끌만한 설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정 떨어지게 만드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냐? 가족이냐를 저울질 하게 하는 말씀이나(26절),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이(27절)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들뜬 신앙이 되지 말고 적어도 이성적인 신앙은 돼야 한다면서 소위 <망대 짓는 비유>와(28-30절), <참전을 결정할 지혜로운 왕 비유>를(31-33절) 말씀하시고, <맛을 내는 소금 비유>를(34-35절) 끝으로 말씀하시면서 잘 알아들으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제자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임을 알고 출발할 것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한 때 “참 쉽지요.”라는 한 코미디언의 멘트가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해야 하자는 뜻인데, 하려고만 하면 쉽다는 역설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복습을 꼬박꼬박하고, 예습까지도 열심히 하면 장학생이 된다면서, “참 쉽지요.”라고 말합니다. 사실은 누구나 할 수 없는 힘든 일인데 말입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비용을 셈해야 하는 것이나,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상대와 자신의 힘을 비교해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정반대라는 점을 꼬집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허다한 무리”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창조적인 소수자”라는 말도 한 때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대중이라는 것은 인기몰이에 걸려들기 쉬운 존재들이어서, 중요하게 취급할 가치가 없을지 모릅니다. 적어도 제자의 길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충분히 고민해 보고, 앞뒤를 차분히 따져 본 다음에야 따를 수 있는 길이 제자의 길일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요즘 목회 지망생들이 줄어든다는 것에 일말의 기대를 가져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질 충분한 고민을 하고 손을 들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목사님은 제자 몇이나 두셨어요?” 라고 묻는 물음에, 12명의 제자 육성으로 만족하신(?) 주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