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삶의 방향성을 살필 때. / 눅 16:18-31.

박성완 2019. 5. 21. 02:56

묵상자료 4405(2013. 6. 8. 토요일).

시편 시 97:5-8.

찬송 29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린 오누이는 낡은 신발 한 켤레를 번갈아서 신고 있습니다. 오빠가 여동생의 신발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아들아, 뭘 사줄까?” “신발이요.” 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 것도 사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해맑은 미소만 지었습니다. 동생이 불평합니다. “오빠 운동화는 신기 싫어. 냄새나서 창피해.” 속상했습니다. 자기 운동화가 낡고 냄새나서가 아니었습니다. 동생에게 새 신발을 주지 못해서였지요. 그래서 3등이 되기 위해 달렸습니다. 마라톤 경기에서 3등을 하면, 운동화를 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뙤약볕이 쏟아져도 넘어져도, 용수철처럼 일어나서 달리는 이유는, 오로지 동생에게 새 신발을 주고 싶어서 옅습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달리는 바람에, 3등을 해야 하는데 1등을 해 버렸습니다. 서러워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하나 뿐인 운동화는 열심히 달리느라 밑창까지 뜯어졌고, 발은 온통 물집과 상처투성이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는 게 아닙니다. 동생에게 꼭 신발을 주고 싶었는데 주지 못해서, 그게 아파서 웁니다.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의 현실은, 지독하게 가난해서 천국과는 멀어 보입니. 그런데도 <천국의 아이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지 못해서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주고 싶은데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천국의 마음이 아닐까 하고 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527일 방송>

 

2.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불리는 본문입니다. 우리는 사후(死後) 세계에 대해서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이라는 말조차 떠올리지 않고 싶어 합니.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는, 죽음과 함께 올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참 좋은 말씀입니다. 첫째는 죽음은 부자든 거지든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항상 곁에 있어줄 것 같았던 지인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있으니, 저와 여러분도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지옥과 천국으로 갈려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윤리적인 면이 강조되는 듯 합니다만, 사실은 신앙이 강조되는 말씀입니다. 부자의 경우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그는 아브라함의 말처럼, “좋은세상에서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넉넉하고 행복했습니다. 오래 사는 것 말고는 달리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자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전부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에게 이 세상은 천국이고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달랐습니다. 그에게 이 세상은 지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옥 같은 이 세상을 더 이상 의지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세상, 천국을 사모했습니다. 적어도 천국을 사모하는 그 시간만큼은 그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 천국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향해서 사느냐? 무엇을 바라보고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느냐?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 부자의 삶의 방향과 거지 나사로의 삶의 방향은 그들의 신앙과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신앙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나사로는 천국만을 바라보며 살았고, 부자는 지옥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셈이니까요. 지금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고 살고 있는 걸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