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육친들에 대한 존경심은 필요하다. / 눅 8:16-25,
묵상자료 6579호(2019. 5. 22. 수요일).
시편 10:10-12.
찬송 43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리학도인 마리는 최고의 성적을 받고 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때 같이 공부했던 프랑스 청년이 그녀에게 청혼을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입주 가정교사 시절에 받았던 상처를 떠올리면서 거절하지요. 그러면서 고국 폴란드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프랑스 청년 피에르 퀴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마리를 설득합니다. 결국 마리는 마음을 바꿉니다. 당신에게 절대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거다 라는 사랑의 맹세도 맹세지만 보다 가치 있고 유용한 물리학적 연구를 하기엔 파리가 나을 거라는 설득에 결정적으로 마음을 바꾼 거였지요. 파리로 돌아온 스물여덟 살에 마리는 아침내 서른여섯 살에 교수가 된 피에르 퀴리와 결혼을 합니다. 결혼 후에도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두 사람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딸 이 랜을 낳고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당시 시대상으로 볼 때 아내이고 엄마인 마리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남편 피에르 퀴리의 이해와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남편은 가사일이나 육아를 이유로 아내의 실험이나 연구를 절대 중단시키지 않았지요. 마리 퀴리 역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어지만,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면서까지 실험을 계속합니다. 그런 치열함으로 계속 우라늄을 연구하고 실험하던 마리는 어느 날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빛을 내는 원소를 발견합니다. 바로 라듐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원소에 자신의 조국인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폴로니움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지요. 그리고 폴로니움에 대한 논문을 써서 그녀는 방사능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합니다. 그런 아내의 성과를 지켜본 피에르 퀴리는 아예 자신의 실험을 접습니다. 아내의 실험을 도와주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 것이었지요. 그런 부부에게 제일 다급한 문제는 라듐을 제대로 실험할 연구실이었습니다. 방대한 량 라듐 실험실로는 넓은 규모의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걸 쉽게 구할만한 형편이 못 됐지요. 그래서 사방으로 알아보려 애를 쓰던 중 의과대학에서 시신 보관 장소로 쓰다가 방치한 황량한 헛간이었습니다. 마리 퀴리 부부는 두말없이 그곳으로 실험도구들을 옮겼습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5. 8. 방송>
2. 오늘 본문도 세 가지 서로 다른 말씀을 읽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 단락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이냐?(19-21절)”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이 일화를 모두 취급하고 있을 만큼(마 12:46-50, 막 3:31-35)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서나 마가복음서의 내용은 주님의 모친 마리아가 옆에서 들었다고 한다면, 화가 날 수도 있는 말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냐?”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서는 생략되었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서의 저자는 그 대상이나 상황이 주님의 가족들에 대해서 사려 깊은 언행이 필요했음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누가복음서가 당시 기독교회를 정치 지도자에게 변호해야 할 처지에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논쟁이 생길 부분들을 생략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이런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면서도, 꼭 필요한 중심 주제를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성경을 해석할 때 삶의 자리에서 본문을 바라보는 것과 함께,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많은 개신교도들이 예수님의 육친인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형제자매들에 대해서 무심한 것에 대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율곡을 훌륭하게 키운 신사임당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면서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 30년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과소평가를 해서도 안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30년의 생애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말씀 속에 녹아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우스개 얘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출처는 왜관 분도 수도원에 계시는 한 수도사님의 말씀입니다. 하루는 천국에서 데모가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누구의 소행인지를 알아보라고 하셨답니다. 잡혀 온 사람은 예수님의 육친 요셉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의아하게 여기시고 자초지종을 물으시니까 “내 마누라와 아들을 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누라는 성모 마리아라고 부르고, 아들은 성자 예수님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평생을 동정남으로 마리아를 수절하며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성자 요셉이라고 부르는 자가 없다고 섭섭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과를 하시고 성 요셉의 날을 지정해 주셨는데 매년 3월19일로, 1947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Ⅳ)가 공포했다고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