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스스로 선택하라. / 눅 22:31-38.
묵상자료 4432호 (2013. 7. 5. 금요일).
시편 시 104:31-35.
찬송 3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남자 동창생이 어렸을 적에 벌레 먹은 사과를 먹다가 불현 듯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여자는 예쁜 것만 먹고 살 거야. 과일도 예쁜 것만 먹고, 이렇게 벌레 먹은 과일은 절대 먹지 않고. 그러니까 저렇게 예쁘지. 어떻게 그런 대단한 착각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라면서 여자라고는 어머니 밖에 겪어 본 적이 없어서 라고 답했습니다. 예쁜 것만 먹고 예쁜 말만 하고 예쁜 짓만 하는 여자. 웃음이 나왔지만 생각해 보면 어디 여자라고 남자에 대한 그런 환상, 품어본 적 없을까요? 여자는 다 그렇게 예쁘고, 남자는 다 그렇게 멋지고. 무엇보다 나만 열렬하게 사랑해 주고. 철없는 환상을 꿈꾸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요. 아직도 다 버리지 못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중에 사랑에 대해서 품고 있는 대단한 환상 하나.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해 줘. 내 부족한 점도 이해해 줘.”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요구이다. 한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좋은 면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이 돼야 한다.” 작가 알랭드 보통이 했던 말입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이 돼야 합니다. 좋은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이 사랑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내가 점점 더 좋은 사람으로 점점 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 우리들 사람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상대로, 이래도 나를 사랑하겠어? 이렇게 부족한 나를? 이렇게 자꾸 시험에 들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6월 19일 방송>
2. 가장 부자로 살았을 때가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족한 것이 없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 다음 말씀을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글치가 빠른 분은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시절에는 풍족했는지는 몰라도, 부족함은 없었다고 말입니다. 아마도 제 신앙으로는 풍족함은 아니고, 부족함 없음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자문하였던 질문에 자답하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단순한 믿음을 가졌던 순진했던 그 때가 가장 부자였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 질문이 솟아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제는 <중략> 살(구입) 찌니라.”는 대목에 이르러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것이며,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제자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 때문이라서 말입니까? 왜 전대와 주머니를 가져야 한다고 하시는 걸까요? 여러 가지 개연성(probability)이 있습니다. “이제는”을 주님이 떠나가시는 이후를 의미할 때, 주님이 계시지 않으니 너희가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일 수도, 아니면 너희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것이라는 뜻일 수도, 그도 아니면 전대나 주머니 없이 살았던 대로 쭉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말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계시지 않지만, 그래서 주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가야 하고 그럴 준비를 해야 하지만, 어떤 형편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이제 중심점은 모든 선택은 제자들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제 마음을 요동치게 한 슬픔은 선교지에 대한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복음의 지평이 더욱 더 넓혀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