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에 먹혀 죽은 헤롯. / 행 12:18-25.
묵상자료 4451호 (2013. 7. 24. 수요일).
시편 시 106:43-48.
찬송 44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일과입니다. 역시나 하늘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 내려 앉아 있어서, 번개나 천둥이 조금만 때려도 물이 금방 뚝뚝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담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긴 하늘에 속아서 우산을 가지고 나갔다가, 쓸 일이 없어서 잃어버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니까요. 밖에서 잃어버리고 들어와서는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비가 와서 우산을 찾자, 엄마가 알려 주셨습니다. “너 어제 우산 갖고 나갔다가 안 가지고 들어왔어.” 그렇다고 이런 하늘을 멀쩡하게 봐놓고 과감하게 우산을 갖고 나가지 않는다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길 한 복판에서 와르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을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일단 뛰어서 가까운 빌딩이나 카페로 들어갑니다. 머리에서 얼굴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닦으며 창밖을 보면, 그 순간에 가장 부러운 사람은 우산 쓴 사람이었습니다. 우산 하나만 있으면 비를 맞지 않을 텐데. 그냥 살이 부러져서 찌그러진 우산이라도 괜찮은데.
아무리 하늘이 크고 넓어도 우산 하나면 충분합니다. 큰 우산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내가 들고 다닐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크기면 됩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 필요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재능이나 실력 인간관계, 그리고 돈. 그것들이 얼마나 필요하냐면, 더도 덜도 바라지 않고 딱 이정도입니다. 평소에는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비가 내리면 안전하게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우산정도. 그러나 이따금 아득해 지는 건, 그 작은 우산 하나조차 갖기 힘들어서, 비를 맞고 거리를 헤매거나, 남의 집 처마 밑에 서 있을 때가 많다는 것.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7월 10일 방송>
2. 베드로가 옥을 탈출한 사건은 헤롯을 화나게 했고, 엄청난 군졸들을 풀어 대대적인 수색작전도 헛수고로 돌아가자, 헤롯은 옥을 지키던 군졸들을 처형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는 벌써 세례 요한과 사도 야고보를 죽인 전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했으니, 앞으로 초대 교회가 겪을 시련은 불을 보듯 뻔했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듯 악한 사람들은 어찌하여 오래 살 뿐 아니라, 영화를 누릴 수 있는지, 종종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뭘 하시나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날이 왔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의 미움을 받고 있었는데, 헤롯의 영토에서 나는 식량을 공급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을 찾아가서 아첨을 떠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헤롯이 말할 때,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로다.” 라고 외친 것입니다. 악마의 끝은 한결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올랐다고 거만과 자만을 배를 내민다는 사실 말입니다. 성경 기자는 헤롯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지적합니다.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가로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헤롯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손길은, 주의 사자(천사)가 맡았는데, 벌레에게 먹혀 죽게 하였다는 것입니다(공동번역 성경,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그러니까 헤롯이 이미 살아 있을 때 벌레가 달려들어 상처를 내고 피를 빠는 그런 상상을 할 수 있게 합니다. 물론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려진 누가는 의학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으로서, 벌레에게 먹힌다는 표현은 의학적인 표현도 아니고, 비과학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아마도 헤롯의 죽음이 당당하고 멋진 최후를 맞는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인간답지 못한 비열하고 추한 한 인생의 끝을 묘사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