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하심으로. / 행 13:1-12.
묵상자료 4452호 (2013. 7. 25. 목요일).
시편 시 107:1-3.
찬송 17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 세차장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기계세차가 끝나서 차의 시동을 걸고 나가려고 하는데, 한 칠순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께서 큰 소리로 “잠깐!” 하십니다. 아마도 세차장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모양이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 멈췄더니, 어르신은 손에 들고 있던 걸레로 차와 바퀴를 한 번 더 깨끗하게 닦아 주셨습니다.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고객의 차가 깨끗해지는 것이 살뜰한 기쁨으로 보였지요. 절로 기분이 좋아서 진심을 담아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이제 정말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또 한 번 “잠깐!” 차를 세우십니다. “왜요?” 라는 물음에 대답 대신, 유리창에 스티커를 붙였다 덴 자국을 나이프까지 동원해 일일이 떼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른 수건으로 마무리까지. 감동 받았습니다. 이런걸 바로 고객 감동서비스라고 하는 거겠지요?
오래 전 한 상점에 들렀는데, 이 물건 저 물건 살피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 안 사려면 만지지 말아요.” 손님이 없는데 대한 분풀이를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없다는 걸 주인은 몰랐을까요? 서비스란 법하고 달리, 편리함을 제공하는 겁니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일일이 말로 표현해야 한다면, 편리한 것이 아니니, 손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해서 제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요. 그러나 만약 서비스가 없다면, 돈만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와 무엇이 다를까요? 오히려 자판기가 더 편리할 수도 있습니다. 자판기는 불친절 때문에 불쾌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바야흐로 사람과 사람 접촉 대신, 사람과 기계의 접촉이 더 익숙해진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작지만 세심한 친절에 큰 감동을 받았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7월 3일 방송>
2. 이방에 세워진 첫 교회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최초의 선교사로 뽑아 소 아시아 지방으로 파송하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직 안디옥 교회 자신도 연약한 점이 한 둘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안디옥 교회가 선교에 나섰던 까닭을, 성령의 명령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2-3절).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은 요한 마가를 수종자로 삼아 실루기아에서 배로 구브로로, 살라미, 바보에 가서 복음을 증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길에는 항상 장벽은 있게 마련인데, 본문에는 거짓 선지자 박수 엘루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마귀의 종노릇하는 그를 향해서 사울은 소경이 될 것을 예언하자, 그는 즉시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그 지역 총독이 그렇게 된 일을 보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임재에 대해서 많은 기독자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오해 중의 대부분은 성령을 받게 될 때의 현상을 주로 말합니다. 환상을 보았다던지, 음성을 들었다던지, 가슴이 뜨거웠다는 등의 현상을 성령의 임재로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은 무병을 앓는 무당들입니다. 그들은 무병을 앓게 되면 자신의 힘으로 거역할 수 없어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임재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요 14:26). 무엇보다도 성령님께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요 14:16-17).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욕망이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성령님께 순종하려고 한다면 언제든 성령의 인도가운데 살수 있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직접 계시외에 영적 교통 수단이 없었던 원시 기독교회를 제외해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