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 행 18:12-28.
묵상자료 4471호 (2013. 8. 13. 화요일).
시편 시 110:1-3.
찬송 1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들은 중학교 때 도시로 유학을 나가서, 30년 가까이 도시 생활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오자, 아버지는 마침 잘 됐다면서 마당에 난 잡초를 뽑으라고 시켰습니다. 어정쩡하게 낫을 들고 나간 아들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습니다. 마당에 무성한 풀들을 보자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나서 마음이 절로 푸근해졌습니다. 그런데 뒤따라 나온 아버지가 잡초 안 뽑고 뭐하느냐고 야단을 치십니다. 아들은 아무 데도 잡초가 없다고 잡아뗍니다. 아버지는 도시에서 살더니 바보가 됐냐면서 기막혀 하시더니, 낫을 빼앗아 아들이 감흥에 젖어 보고 있던 풀들을 거침없이 베어냅니다. 아들은 황급하게 아버지의 낫질을 막으며 말합니다. “예쁘기만 한데 왜 베어내시기만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잡초가 별거냐? 제자리가 아니면 다 잡초지.”
그래서 잡초 같은 인생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생각해 보면 평생이 내 자리를 찾아가는 일의 연속입니다. 어느 곳에 누구 옆에, 평생의 내 자리가 있는지 두리번거립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놓고서도, 이곳이 제자린지 미덥지 않아, 계속 두리번거립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잡초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쓸모가 있어도, 제자리에 있지 못하면, 스스로 제자리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잡초가 됩니다. 잡초라서 잡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지 못해 잡초가 됩니다. 운수 없는 날, 무자비한 낫질에 가장 먼저 무력하게 무너집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7월 24일 방송>
2. 바울 사도의 선교 여정에는 숱한 장벽들이 가로막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인 것이 복음을 전할 장소로 안성맞춤인 곳이 유대인의 회당이었고, 바로 그곳에서 유대인들의 신앙에 반하는 예수님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은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철저한 것이었고, 필요하다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배경에는 출애굽 신앙과 가나안 정착의 과정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아가야 지방의 로마 총독에게까지 고소를 당한 바울 일행은 아가야 총독 갈리오는 부정과 불법이 아닌, 전통이나 신앙의 문제인 경우 자신의 관심 밖인 것을 이유로 되돌려 보내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유대인들은 회당을 빌려준 회당장 소스데네에게 화풀이를 하였는데, 총독은 그것만은 눈감아 주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을 마감하면서, 사도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일찌기 했던 서원을 이행하려고 머리를 깎았다는 대목이 궁금해집니다. 무슨 서원이었으며 왜 머리를 깎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행전의 저자는 바울이 율법에 얼마나 충실한 사람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구절을 삽입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유대인 남자가 머리를 깎는 경우는 일반적인 일이지만, 특별한 서원을 할 때, 가령 나실인으로 살겠다는 서원을 하고, 나실인으로의 삶을 시작할 때 머리를 깎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바울의 가슴속에 항상 머물러 있던 생각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삶이란, 나실인과 같은 하나님께 대한 순결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한 때문에, 그와 비슷한 상징적 행동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하게 합니다. 고전 2:2에서 보여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나, 고전 7장에서 강조하는 독신 생활은 모두 나실인의 한 모습이 아닐까 할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순결하게 살겠습니다.
3. 아침 식사는 신학교로 가는 도중 길가에 있는 월남 쌀국수 집에서, 불란서 빵과 함께 먹는데 제겐 훌륭한 아침식사입니다. 우리 돈으로 1,500원 정도입니다. 오늘 저녁엔 멀리서 참석한 교회지도자들과 얘끼를 나누며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