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내일은 희망적일까? / 막 13:1-13.
묵상자료 4482호 (2013. 8. 24. 토요일).
시편 시 114:5-8.
찬송 44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습니다. 상처받은 기억을 가진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기억 속에 스스로를 피해자로 새겨 둔 것이 먼저인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르겠습니다. 불행하기 때문에 계속 그 기억에 매달리는지, 아니면 그 기억 때문에 불행한지. 그러나 무엇이 먼저이든 자신을 피해자로 자처하며 다른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는 현재의 모습은 같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딱 한가지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겠지요. 바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입니다. 그는 모든 책임을 외부로 돌리며 자신의 상처만을 돌아보고 또 돌아봅니다. 이렇게 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지고 계속해서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팔월 십오일은, 일본에서 종전 기념일로 불리지만 사실상은 패전 기념일이며, 전국적으로 전몰자 추모대회가 열립니다.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들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힌 것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원폭으로 입은 자신들의 피해를 되새기면서 추모하는 겁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여기며 가슴아파합니다. 물론 원폭으로 무고한 일반인들이 희생당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고통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세상에서 무서운 일중의 하나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자처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반성과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나는 죄가 없다고 만족해하는 것. 그만큼 편리한 결말이 어디 있을까요? 어두운 역사가 쳇바퀴 돌 듯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8월 15일 방송>
2. 사람들은 언제나 오늘과 내일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현실과 그 현실 너머를 잘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어떻게 내일을 만들 것인지, 현실이 어떻게 그 너머로 이어질 지를 생각해 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에 만족하거나 현실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하고서, 곧 따라 오는 내일과 그 너머를 상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마가복음서의 소 묵시록으로 불리는데, 참으로 두려운 말씀들이 연거푸 들려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화려한 돌들이 어떻게 철저하게 무너질 것인지를, 거짓 예수들이 나타날 것도, 난리와 무서운 소문들이 두렵게 할 것도, 민족과 나라들이 서로 원수처럼 싸우게 될 것과, 형제가 형제를, 부모가 자식을 죽는 곳으로 내 보내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그런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행의 날이란, 흔히들 하는 말로 운이 없거나 재수가 없어서 생긴 우연한 사건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 내용이, 내일 그리고 그 너머에 일어날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질문해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내일은 안전하고 희망적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도 깊은 병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기고 함께 떠내려가는 무리들 속에 우리들이 끼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사해 보이는 겉모습에 올인(alll in) 한 허세로 가득 찬 무리들을 경계하면서도, 어느 새 그들과 함께 섞여 웃고 떠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몸짓만이라도 보고 싶은 하루하루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