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옥합을 깨트릴 가장 적절한 때. / 막 14:1-11.

박성완 2019. 5. 24. 00:37

묵상자료 4486(2013. 8. 28. 수요일).

시편 시 115:14-18.

찬송 20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서 무료해 하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비가 내리고 날도 무덥고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이스크림 사줄까? 물어봤더니, 좋다고 합니다. 편의점에 가자마자, 아이스크림 냉장고부터 열어주었습니다. 아직은 키가 닿지 않아서 스스로 냉장고 문을 열지는 못해도, 스스로 골라먹는 재미는 주어야 하겠기에, 아이를 안아 올려서 냉장고 안을 보여주니, 평소에 자기가 즐겨먹는 아이스 바를 용케도 골라냅니다. 포장을 뜯어서 아이의 입에 물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이의 발걸음은 집이 아니라, 놀이터로 향합니다. 벤치로 쪼르르 달려가서 턱 하니 자리 잡고 앉아서, “나 다 먹고 갈래.” 합니다. “그래, 그러자.” 하고 옆에 앉아서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예상 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날씨 탓에 먹는 속도보다 녹는 속도가 빨랐던 겁니다. 아이스크림은 아이의 입에 닿기도 전에, 금방금방 녹아서 아이의 손에서 무릎으로, 땅으로,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지켜본 결과, 아이가 먹은 아이스크림은 절반도 못된 것 같았습니다. 아깝게도 나머지 절반 이상은 다 녹아버렸습니다. 빨리빨리 먹었으면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위 탓만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처럼 분명히 내 손안에 있었는데, 아이스크림 녹듯 사라져버린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간이 그렇고 또 기회가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가 아이스크림 녹듯 녹아서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지요. 그러고 보면 로멩가리가 44살에 쓴 소설 [레이디 L]에 나오는 구절이 참 절묘합니다. 바로 이런 구절이었어요. “세월이 이렇게까지 결코 정말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세월은 참으로 야만스러웠다. 시간은 아무것도 존중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한탄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거슬리기는 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730일 방송>

 

2. 옥합을 깨트린 여인의 일화는 우리에게 돈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마침 요즘 며칠 저는 생전 처음으로 낯선 글을 쓸 기회를 얻었습니다. 돈을 아주 잘 사용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섬광처럼 저의 이야기와 오버 랩(over lap)이 되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부은 여인이 있었고, 그 때문에 가난한 자들을 도울 기회가 사라졌다며 열을 내는 사람까지 생겨난 것입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거의 1년 일해서 벌 수 있는 300데나리온을 한 순간에 쏟아 부어버린 이 한심한 여인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도 그 돈으로 가난한 자를 돕지 못해서 화가 나십니까?

   돈의 가치는 그 자체로는 중립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돈이 어떤 일에 무엇을 위해서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값지게 사용하는 돈의 가치란 무엇일까요? 먼저 문제의 여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일화라는 것을 보아서, 그 여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서는 그 여인이 바로 베다니에 살고 있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죄 많은 여인이라고 했습니다(7:37, 39, 47). 그녀는 왜 이런 일을 했을까요? 마태와 마가복음서 기자들은 이 사건을 주님의 장사를 위해서 그리하였다고 해석하였고(26:12, 14:8), 누가복음서 기자는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라고(7:40-50) 해석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누가복음서의 기록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사를 위해 살아 있는 사람에게 향유를 붓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닌 때문이며, 죄의 용서를 위한 헌신은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인 때문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돈을 쓰는 일이야말로 가장 슬기로운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돈은 이런 일에 아낌없이 쏟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마 이런 저의 해석에 동의할 분이 있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