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빌라도의 재판 유감. / 막 15:1-11.

박성완 2019. 5. 24. 00:45

묵상자료 4493(2013. 9. 4. 수요일).

시편 시 118:5-7.

찬송 36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우는 오랫동안 굶주려서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뭐라도 먹을 요량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포도밭이 보입니다. 나무마다 잘 익어서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저 포도만 먹어도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저 포도를 꼭 먹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있는 힘껏 뛰어올랐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계속 뛰어올랐습니다. 너무 힘들면 잠시 쉬었고, 그러다가 다시 뛰어올랐습니다. 닿을 듯 닿을 듯 결코 닿지 않는, 먹음직스러운 포도송이. 배고픈 여우는 포도를 갈망했고, 포도를 따 먹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있는 힘껏 뛰었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포도를 따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 여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실패했다. 행운은 커녕 노력한 만큼 일이 풀리질 않는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신세를 한탄하고 세상을 원망하다가는, 포도밭 주인한테 잡혀서 가죽까지 벗겨질지 모릅니다. 그까짓 익지도 않은 포도 따위, 잘못 먹으면 위궤양에 걸릴 거야. 그렇게 돌아서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이 배고픔에 대해서도, 호기롭게 그까짓. 너무 간절하게 먹고 싶었던 포도송이에 대해서도 그까짓, 외쳐봅니다. 남들 눈에는 비겁한 자기 합리화로 보일지 몰라도, 어쩐지 아까보다는 견딜 만해집니다. 죽을 것처럼 괴로운 일이 있다면, 그까짓, 외쳐봅니다. 벌어진 일 때문에 괴로운 것인지, 그 일을 자꾸만 과장하는 내 안의 감정 때문에 괴로운 것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의 전부처럼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도, 그까짓, 한번 외쳐봅니다. 진정한 사랑인지, 부질없는 집착인지, 그 경계선이 들어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827일 방송>

 

2. 빌라도의 재판 일화는 요즘 말하는 여론 비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법리와 그 정신에 따른 재판이 아니라, 흥분한 군중들의 의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재판 말입니다. 오래 전에 저의 고향 마을에서도 소위 <인민재판>이라는 게 벌어졌었다고 합니다. 6.25 동란 중 아주 흔한 일이었다고 하는데, 그 때 저의 아버지도 그 인민재판에 불려갔고, 단 몇 초 만에 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트럭에 태워 어느 골짜기로 향하려던 긴박한 상황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현지 공산당원 빨치산 중 한 사람이 아버지를 잘 알고 있었는데, 그 분의 도움으로 그 대열에서 빠져 나와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재판입니다. 무고한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기는 인민재판이 법치주의를 자랑하는 로마의 총독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니 말입니다. 빌라도는 정의감은 물론 소신조차도 없는 참으로 유약한 총독이었습니다.

   재판은 그 권한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간단하고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지만, 그 판결에 의해서 어떤 이는 목숨을 잃기도 하고, 어떤 이는 수십 년간을 옥살이로 폐인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재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자 잘못을 가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은 결코 재판정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도 그렇고, 시청에서 사무를 보는 공무원도 그렇습니다. 몇 해 전 고등학교 은사님을 모신 사은의 밤에 흰 머리가 덥수룩하게 난 한 제자가 일어나서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수학을 못해서 졸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선생님 저는 앞으로 시인이 되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수학적인 재능이 없어서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수학점수가 형편없어도 졸업은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고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제게 졸업할 수 있도록 점수를 고쳐주셨고, 약속대로 저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이 그 분이셨으니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