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를 아는 지혜를. / 고전 1:18-31.
묵상자료 4506호 (2013. 9. 17. 화요일).
시편 시 119:29-32.
찬송 51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 파니의 할아버지 집에는, 노란 색 고무줄로 칭칭 감겨 있던 낡은 라디오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니가 지금까지 그 라디오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조금 엉뚱합니다. 라디오가 조금만 지직지직 거리면, 할아버지는 좀 더 정성껏 주파수를 맞추는 대신에 탕 탕 탕하고 라디오를 몇 대 때리곤 하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파니는 할아버지의 그런 식의 대처법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지요.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생긴 건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라디오부터 우선 몇 대 때리고 보는 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었던 거든 요. 그래서 파니는 아무 이유도 없이 자주 얻어맞곤 했던 그 불쌍한 라디오를 쉽게 잊지 못합니다. 파니는 아주 정밀한 옛날 사진기까지 척척 고쳐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페어러브>에서 기계를 다루는 비법 하나를 배운 적이 있어요. “기계는 관계만 알면 돼. 부품들이 단순하건 복잡하건 서로 어떤 관계인 줄만 알면 못 고칠 것이 없거든.” 영화 속 주인공 역을 맡았던 배우 안성기는, 나직나직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파니 생각에 관계를 안다는 것은, 그 기계의 작동원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동원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딘가가 고장이 났을 때, 직감으로 우격다짐으로 한 방에 해결하지 않지요. 이성적으로 차근차근 접근해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파니는 세상의 문제들이라는 것도, 결국 같은 이치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좀 시끄럽다면, 그 이유는 모두 직감과 우격다짐을 내 세워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10년 4월 8일 방송> a.
2. 사도는 지혜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시대의 사람들, 구체적으로는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묻고 있습니다만,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던지는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십자가의 도(道)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흔히 지식과 지혜를 구별하라고 합니다. 어떤 진리나 사실 등을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지혜는 삶의 의미와 목적 등을 살펴 바르게 대처하는 힘 혹은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fact를 아는 지식보다는, 삶을 잘 짊어지고 나가는 힘인 지혜가 훨씬 더 소중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모자란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3-24절).
그런데 사도는 세상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자칫 지혜가 모자란 경우가 많음을 지적합니다(25-29절). 실제로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지식이 많은 사람이 여러 면에서 문제아 노릇을 하는 경우를 보아 왔습니다. 일을 처리하는 실제적인 태도에서, 그리고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 등에서 말입니다. 좀 더 넓고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달린 십자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사도를 만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가 달리신 십자가는 오늘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말입니다. 하늘 보좌를 뒤로 하고 마구간을 찾으신 예수님,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중심 자리가 아니라 변방으로 내 몰려진 사람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힘없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를 자청하는 분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서 모든 죄와 허물을 짊어지신 십자가의 삶을 살핀다면, 반드시 지혜를 얻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를 체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특히 지금 가슴 저미며 우는 이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