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진짜 이유(?) / 고전 4:1-7.
묵상자료 4510호 (2013. 9. 21. 토요일).
시편 시 119:45-48.
찬송 52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내가 빨래 건조대에서 말린 빨래를 걷어와, 일부러 남편 앞에 쌓아두곤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설거지를 했습니다. 개켜야 할 빨래가 산더미인데 한가하게 TV 뉴스만 보는 남편이 얄미워서 결국 폭발하고 맙니다. “빨래 안 보여요? 좀 알아서 개 주면 안 돼요?” 불시에 공격을 받은 남편이 머쓱하게 대꾸합니다. “빨래가 안 보였어. 정말이야.” 아내는 그게 어떻게 안 보일 수 있냐고, 빨래개기 싫으니까 변명을 한다고 야단입니다. 남편은 정말인데, 믿어주지 않는 아내가 답답합니다. 묵묵히 빨래를 개던 남편 눈에 못 보던 물건이 들어 왔습니다. TV 옆에 처음 보는 노트북이 놓여 있습니다. 아까 TV를 볼 때는 안 보였는데. 이제서야 보이다니 신기합니다. 아내에게 웬 노트북이냐고 물었을 때, 아침에 물었을 때 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반문합니다. 남편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한 동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납니다. 아내가 아침에 전화해서 노트북 하나 사도 되냐고 묻기래, 성과급 나오면 사라고 했는데, 뒤엣 말만 들은 겁니다. 아내는 계속 남편이 성과급이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사실 여부를 가지고 계속 따져봐야, 싸움만 더 커집니다. 남편이 눈앞에 있는 빨래를 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아내가 노트북 사라는 말을 들은 것도 사실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모방범]에는 사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알려주는 구절이 나옵니다.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이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어차피 인간은 보는 것 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 밖에 믿지 않아.”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9월 11일 방송>
2. 남을 판단하는 일보다 쉬운 일, 그리고 재미있는 일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두 세 사람만 모여도 가장 잘 하는 일들이 남 얘기며, 그것도 남 흉보는 일이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고상하다는 교수님들의 주변에도, 비판하지 말라며 설교까지 하는 목사들의 주변에서도 예외가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남을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 아니냐 하는 생각입니다. 우선 이렇듯 다른 사람들을 화제에 올리고 까불어 대는 것은(키에 곡식을 올려놓고 알곡만 추려내는 작업을 의미함), 심리학에서는 방어(위)기재(defense mechanism)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화제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이 같은 류의 문제로 비난 받지 않기 위해서 하는 작업이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은 허물들이 너무 많은 때문에, 아예 선수(先手)를 쳐서 화제의 주인공을 다른 사람에게로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 말입니다.
사도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율법의 교사로서 교육도 받았고, 훈련도 했으며 그런 실천적인 삶에서 자부심을 가져왔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자신은 그런 율법적인 의로움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테니 말입니다. 아볼로와 자신이 그런 점에서 모범을 보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둘 사이에서는 서로 비난이나 판단은 물론, 시기와 질투 잘난 체 하지 않은 점이라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뛰어난 존재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었는데도, 마치 자기 스스로 그리 된 것처럼 자만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6-7절). 가끔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복된 사람이 되었는가? 순전히 주님이 그리 되게 해 주셨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