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인 전도를 해야할 때. / 눅 9:1-17.
묵상자료 6582호(2019. 5. 25. 토요일).
시편 11:1-4.
찬송 2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데, 한 여름에는 어떡하지? 5월의 날씨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더위에, 남자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다가 잠시 저 멀리 이탈리아의 베니스에 펼쳐지는 어느 해변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지난 12일에 개막한 베니스 비엔날레. 지난 며칠 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린 곳이 바로 그 해변가라고 합니다. 올해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투아니아의 국가관, 전시 제목은 <태양과 바다>인데요. 건물 안에 인공 해변을 만들고, 스무 명 남짓한 배우들이 해변을 찾은 휴양객이 돼서 바닷가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낸다고요. 전시장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부터 문을 닫는 오후 7시까지, 해변의 휴양객들은 잔잔히 깔리는 오페라 음악을 배경으로,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책을 읽고, 편안하게 누워 잠을 자고, 먹을 것을 먹고 노래를 하고, 공놀이를 하고, 개를 산책시키고요. 관람객들은 2층에서 그 아래층에 펼쳐진 해변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게 전부라고 합니다. 그 모습을 얼마나 지켜볼지 결정하는 것도, 오롯이 관람객들의 몫.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렇게 휴가를 보내는 게 맞나? 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는 어떻게 하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후 변화와 환경문제에 생각이 다다르게 된다고 합니다. 무더운 5월의 어느 날, 남자는 오페라 음악이 깔린 베니스 비엔날레의 작품 속 해변 풍경을 상상해 보면서, 작품이 품고 있는 속뜻을 생각해 보는 보통의 아침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9년 5월 14일 방송>
2. “열 두 제자의 파견(1-6절)”, “불안에 싸인 헤롯(7-9절)” 그리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10-17절)”을 읽었습니다. 세 단락 모두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매 주 토요일이면 교감 선생님이 교회학교 교사들을 모아놓고 다음 날 주일에 가르칠 성경 말씀을 지도하셨습니다. 훗날 선생님은 서울 충현교회에서 부목사님으로 일하시다가, 홍콩 충현교회를 개척하신 후 지병으로 별세하신 홍종만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방법을 따르셨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세 가지를 가르치셨는데, 하나는 마귀를 다루는 방법, 둘째는 병을 고치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구잡이식으로 그냥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선교를 떠날 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팡이나 쌀자루와 빵 그리고 돈이나 여벌 옷가지들도 말입니다. 물론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당부까지도 들려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돈벌이는 물론 출세와는 거리가 한참 먼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데 오늘 한국 교회의 문제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노래합니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면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부합니다. 대신 장래가 유망한 유명 교회 목사님에게 줄서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귀를 제어하는 권세나 병을 고치는 능력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현대 교회는 앞의 두 가지 문제는 현대 의료진에게 맡기면 더 좋겠습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길 일입니다. 이제는 복음 전파에 더욱 주력할 때이니까 말입니다. 시대가 변하였으니 전도 방법도 변해야 합니다. 그 중에 영원히 변치 않을 전도방법은 일가친척을 대상으로 하는 안드레 방식과, 친구와 가까운 이웃을 대상으로 하는 빌립 방식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인격적인 전도방식인 때문에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말입니다. 목사이면서 자신의 부모님도 전도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