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능력이 없다면, 그냥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게. / 고전 5:9-6:11.
묵상자료 4514호 (2013. 9. 25. 수요일).
시편 시 119:61-64.
찬송 37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전기요금 청구서에서 미아를 찾는 광고를 봤습니다. 평상시에는 건성으로 보아 넘겼던 미아 찾기 광고입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사진 속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 아이처럼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지요.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서 부모의 애간장이 녹고 있을 이 아이와 달리, 무사하게 집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고마운 사람을 우연히 만난 덕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길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집 주소를 말하며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었지만, 다들 모르겠다는 말만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그 언니도 모르겠다고 하고, 가던 길을 그냥 가버렸습니다. 머릿속이 아득해져서 그 뒷모습을 쳐다보고만 있었지요. 그런데 마치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그 언니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몸을 돌려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저에 물었지요. 동네 이름은 확실한 거야? 그렇다고 대답하자, 택시를 잡았습니다. 그리곤 나를 태우더니 자신도 함께 올라탔습니다. 그 언니는 그렇게 내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 까지 지켜본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만약에 그날 아무도 나에게 친절함을 베풀지 않았다면, 행여 불운이 겹쳐서 나쁜 사람을 만났다면, 얼마나 큰 비극이 벌어졌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처럼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수한 인간애로 도움을 베푼 것이기 때문에 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큰 일 겪지 않고 잘 살고 있다면, 그 이유의 일정 부분은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력 덕분입니다. 이런 고마움은 어떻게 갚아야 하는 걸까요? 언젠가 고마운 선배에게 어떻게 갚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선배가 들려줬던 말이 떠오릅니다. “나한테 갚으려고 할 필요는 없어. 네가 받은 그대로 후배한테 돌려주면 돼.” 그래요. 우리가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이유도, 그렇게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9월 12일 방송>
2. 가을 심방중이어서 교우들의 일상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듣곤 합니다. 그런데 오랜 투병생활로 식욕을 잃은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젊을 때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식욕을 잃으면 큰일이다. 그 다음엔 아무런 희망이 없다.” 는 말씀입니다. 모든 욕망의 시작이 식욕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식욕이 있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 희망이 남을 돕고 싶다는 윤리적인 욕망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첫 단락은 5:9-13인데, 적어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 가령 음행, 탐욕, 우상숭배, 중상모략, 술 취함, 약탈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못 본 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잘못을 눈감아주고 덮어 주는 때문에, 교회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공동체로 낙인찍히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서울의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이 거짓 논문으로 문제가 됐을 때, 조사위원회까지 구성 거짓으로 밝혀지면 그 자리에서 그만두겠다고 선언까지 했는데, 따뜻한(?) 사랑으로 덮고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런 한국의 교회 현상을 세상이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교회이며, 그래도 존경할만한 지도자라고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 다음 본문 6:1-11은 교인들 사이에서 혹은 교회 문제로 세상 법정에 가는 일에 대한 충고입니다. 교회 역시 세상 사람들이 모여 온 공동체이니까 자연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부자 교인에게 돈을 빌려 쓰는 이야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교회 구석에서 매달 이자를 주기도 하고, 가끔은 다투는 소리도 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송을 해야 하겠다는 말도 들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빚지는 삶을 살지 말자고, 있으면 쓰고 없으면 쓰지 말자고, 형편에 맞게 살아보자고, 전체 교인들에게 권고한 일도 있었는데, 돌아온 답은 핀잔 비슷했습니다. 사업을 하려면 빚지게 마련이라고, 목사님은 물정을 몰라도 전혀 모른다는 등이라고 말입니다. 문제는 교인들 사이에 생긴 이런 저런 문제들을 세상에 공개하게 된다면, 안 되겠다는 것이 사도의 주장입니다. 자칫 교회 전체가 추문에 휩싸이게 될 것은 물론이고, 교회에 품고 있던 희망마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하는 교회 지도자에 대해서, 탐욕으로 가득 찬 교인들에 대해서, 술수를 일삼는 총회에 대해서 세상이 절망적으로 바라본다면, 그러면 그 화려한 성전이며, 구름 같은 성도의 수자며, 대단한 활동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 아닙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