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배경 속에서 읽을 말씀. / 고전 11:2-16.

박성완 2019. 5. 25. 03:05

묵상자료 4527(2013. 10. 8. 화요일).

시편 시 119:121-128.

찬송 4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더러, 친구들이 말이야, 아직도 이런 휴대전화 쓰냐고 하더라. 나도 너희들 쓰는 그런 전화로 바꿔야겠다.” 이렇게 말했더니 돌아온 딸의 말이 이렇습니다. “아이, 스마트 폰은 노인들한테 복잡해요. 어차피 잘 쓰지도 못한다고요.” 그 때 딸은 제 아이에게 스마트 폰으로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배우면 구하기 힘든 물건도 구입할 수 있고, 게다 집에서 쉽게 받아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컴퓨터 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아들은 5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꾸합니다. “할머니가 컴퓨터는 배워서 뭐하시게요? 괜히 눈만 피곤해요.” 그러는 저는 하루에 2, 3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극장가서 영화 보고 싶다고 하, 노인들이 볼 만한 영화가 없다고 하고, 명절이나 생일이 돼서 선물이라고 사 오는 옷을 보면, 진짜 노인네들이 입는 옷 같아서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이렇게 부모를 모르나 싶어 서운합니다. 노인이 되면 취향도 욕망도 없어지는 줄 압니다. 저희들 눈에는 노인이란 앉아서 저승길 가는 일 준비만 남은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남은 생, 자식 위하면서 사는 것이 그나마 가장 중요하고 보람 있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 착각들을 합니다. 어쩌면 그런 착각과 오해가 가장 큰 불효일지 모릅니다. 늙으신 부모님과의 충돌이 그래서 생기는 걸지 모릅니다. 노인도 나와 똑같이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가끔은 신선하고 새로운 것에 자극 받고 싶고, 친구들과 경쟁의식을 느끼며, 미운 것은 여전히 밉고, 좋은 것은 좋고, 주위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습니다. 하기는 세상에 변두리 인생취급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나이가 어리든 많든 말이지요. 그렇게 이해하면,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지는 노인들과의 관계 맺기가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102일 방송>

 

2. 성경을 읽을 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말씀들을 만나곤 합니다. 공중 예배에서 남자는 머리에 너울을 쓰면 안 되는 반면에, 여자는 반드시 너울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의 배경에는 그리스도가 모든 남자들의 머리이고,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며,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라는 전제가 있습니다(3). 그런데 남자는 머리에 아무 것도 쓸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영광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차라리 머리를 밀어버리라고 말합니다. 까닭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런 사도의 말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동의할 만한 최소한의 상식이란 게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아스가 쓴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이란 책에는, 유다 여자들은 공적인 자리에는 항상 너울을 쓰고 다녔다는 내용이 있는가하면, 바울 시대 고린도 지방에서는 너울을 쓰지 않고 거리를 다니는 여자는 창녀들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울을 쓴 여자는 나는 창녀가 아닙니다.”는 표시가 되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미사 때 참석한 여자성도들은 너울을 꺼내 쓰는데, 아마도 이런 바울의 충고를 따른다고 생각됩니다. 이렇듯 바울 사도는 자신의 시대 배경에 깔려 있는 현상들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듯합니다. 그러니까 너울을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들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너울을 쓰게 함으로 남자의 영광이라는 말로 보호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지금도 아랍권 문화에서는 여자들이 바깥출입을 할 때는 차도르 혹은 룻싸리로 머리를 가리는데, 아프가니스탄의 여인들은 얼굴까지 가리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도의 충고를 가장 잘 지키는 이들이 아랍문화권인 듯합니다. 그들이 여인들의 머리를 가리는 전통은 여자의 머리카락이 성적 매력을 풍기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라고 하는데, 이런 의도에 대해서 찬성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