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성찬과 애찬을 분별해야 할 것. / 고전 11:23-34.

박성완 2019. 5. 25. 03:06

묵상자료 4528(2013. 10. 9. 수요일).

시편 시 119:129-136.

찬송 28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음료회사의 영업사원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매달 그에게 할당량을 떠 안겼는데, 팔지 못하는 음료는 고스란히 빚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슈퍼마켓에 손해를 감수하고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너 요즘 고생이 많다지? 우리 회사 체육대회가 있는데, 내가 팔아줄게.” 친구가 참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좋은 기분으로 친구들과 함께 술자리를 하는데,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하는 이런 말을 듣고 말았습니다. “게가 얼마나 비굴하게 굴던지. 나 같으면 그런 회사 진작에 때려 쳤을 텐. 하긴 게가 어디 다른데 취직할 능력이 있기는 하겠냐?” 얼굴이 화끈거렸고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 모욕을 받고도 내일 친구 회사네 체육대회에 음료를 팔러가야 할까요?

   루사덕은 (당나라) 측천무후가 재상으로 기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동생이 대주의 장관으로 임명되어서 임지로 떠날 때 물었습니다. “우리 형제가 분이 넘친다고, 사람들이 미워할 터인데, 어떻게 몸을 보전할 생각이냐?” 사덕의 동생이 말했습니다. “제 얼굴에 침을 뱉는 자가 있어도 그저 묵묵히 닦을 각오이니, 형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덕은 말합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침을 뱉는 건 그 사람이 너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 아니냐? 그런데 면전에서 침을 닦는 것은, 그 사람의 뜻을 거슬러서 화를 더욱 북돋는 것이다. 침이란 것은 닦지 않아도 저절로 마르는 것이니, 그냥 웃으면서 받으려무나.” 살다보면 다른 사람이 내 면전에 침을 뱉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 없이 내 뱉는 말들이 그러합니다. 비록 모욕적이라도 그것이 나를 어찌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두고 보자며 이를 갈며 분노의 노예가 될 때 뿐, 침 자체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웃으면서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지요. 그들이 어리석어 내 뱉은 침을 맞고, 두고 보자며 복수를 다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주어진 나의 상황에서 행복을 찾고 누리는 일이니까요.<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103일 방송>

 

2. 본문의 23-25절은 지금 저희 교회에서 성찬 제정의 말씀을 할 때마다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성찬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일들이 초대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른 바 성찬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27) 다고 말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33-34) 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초대 교회는 이런저런 이유로 애찬과 성찬을 분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대 교회 당시로써는, 성도의 교제에서 나누는 식탁인 애찬과 성찬에서 먹고 마시는 떡이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애찬을 성찬처럼, 혹은 성찬을 애찬처럼 먹고 마시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지금 우리 한국 개신교 안에서는 이런 해프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 단체는 애찬이란 명목으로 성찬을 거행하고 있는데, 무질서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반 평신도들이 성찬을 집례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는 시골 성당에서는 신부님이 오지 못해서 1년이 넘도록 성찬식을 갖지 못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교인들이 숱하게 많았다는 점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성찬을 집례할 성직자가 없을 경우에는, 불가피한 경우가 생겼을 때는 누군가 신실한 성도가 성찬을 집례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성찬의 제정 목적과 그 의미와 정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남용하게 될 때, 그들의 신앙에 유익이 아니라,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공중 예배 자리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성례전을 집행하는 것은 교회가 인정한 범위에서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건덕을 위해서, 그리고 신앙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