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가 아닌 믿음의 주제인 부활. / 고전 15:12-29.
묵상자료 4538호 (2013. 10. 19. 토요일).
시편 시 122:1-5.
찬송 34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무명인들이 존재합니다. 그녀 역시 무명작가였습니다. 이른 나이에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등단을 했을 때는, 앞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작품을 써내리라. 위풍도 당당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십 수년째 경천동지는커녕 문단에서 조차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5년째만 해도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래의 유명 작가였습니다. 7년이 넘어가자 나에게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좌절하고 갈등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고, 주변 사람들이 그녀 앞에서 소설에 대한 이야기조차 금기시할 때, 부모님이 조심스럽게 “이제라도 너의 살 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을 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앞으로 내가 하늘과 땅의 도움을 빌어 글을 쓸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을 이롭고 행복하게 하고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그 때 문단의 한 선배가 말했습니다. “이제야말로 너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구나.”
모든 길흉화복에는 조짐이 있기 마련이고, 그 조짐이란 현재의 정신과 마음을 읽으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될 조짐을 읽고 싶어 하는데, 잘 될 조짐이라는 어떤 걸까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남긴 말에 답이 들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혹독한 역경을 닫고 성공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허합니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밑바닥 생활이 길었다는 것. 자신에게 힘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것. 그리고 운 좋게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세상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생 또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9월 9일 방송>
2. 우리 인간 앞에 놓여진 최대의 걸림돌은 죽음의 문제일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들을 멈추게 만드는 강한 힘을 가진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말조차 금기시하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당당하게 죽음을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을 얘기할수록 삶을 더욱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죽음을 이기는 부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못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거나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증거를 부정하는 것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의 부활주장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는 데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 주장이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을 갖고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의 부활주장의 한 복판에는 이 구절이 우뚝 솟아 있다고 말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15절)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절)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는 부활의 구체적인 과정이나 방법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활동에 대한 신뢰이며 믿음이라고 말입니다. 마치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설명이나 이해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어디 부활이나 창조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일까요? 매일 일어나는 일상에서의 기적들은 어떻습니까? 죽을 것 같다 에서 살 것 같다로 바뀌는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입니까? 적어도 하나님의 높고 깊은 뜻은 다 헤아릴 수 없는 일이고, 오직 믿음으로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 한쪽만은 열어두기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3. 베트남에서 귀국행 비행기 탑승 3시간 전에 바이크 족에게 날치기 당했던 저의 여권이, 탑승 1시간 전에 다시 되돌아온 기적 이야기가 엊그제 베트남 손님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있었습니다. 지난 사흘동안 2014년도 설교 계획을 세웠습니다. 참 장한 일을 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