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죽는 것이란, 믿는대로 살기. / 고전 15:30-41.
묵상자료 4540호 (2013. 10. 21. 월요일).
시편 시 123:1-4.
찬송 23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외국의 한 호텔에 며칠 간 묵었을 때의 일입니다. 첫째 날 아침에는 분주하게 나오느라 팁을 놓고 나오는 걸 잊었습니다. 둘째 날 아침에는 잔돈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나오는데 마침 복도에서 룸 메이드와 마주쳤습니다. 웬만하면 가벼운 아침 인사라도 먼저 건네줄 법 한데, 어쩐지 뚱한 표정이었습니다. 괜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어제 팁을 놓고 나오지 않아서 저러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손님한테 친절해야 되는 거 아니야? 성격이 좀 그런 모양이네? 사소하고도 불길한 예감까지 뇌리에 스쳤습니다. 시트에 우유를 엎질렀는데 갈아주지도 않는 거 아냐?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그 나라에서는 굳이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왔을 때, 시트는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복도에서 다시 룸 메이드와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았고, 변함없이 뚱한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성실한 타입으로 보였습니다. 먼저 인사를 건넸더니 환하게 웃어줍니다. 수줍음이 많아서 그렇지, 원래는 좋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룸 메이드는 전날이나 다음날이나 똑 같았습니다. 사실은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사람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느낌이 전날과 다음날, 이상한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완전히 달랐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전날에는 팁을 주어야 하는데 주지 않은데 대해서 괜한 내 가책 때문에, 다음 날에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데 대한 안도감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둘 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순전히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아래 펼쳐진 상상입니다. 그 상상이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나는 실제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상상속의 그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10월 14일 방송>
2. 죽어야 하고, 썩어야 하는 게 씨앗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편지했습니다. 날마다 죽는 사람이 된다는 말은, 사도의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라는 점에서 묵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형편이 어쩔 수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날마다 죽을 일, 그것도 자신이 억지로 끌려가서 죽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자청해서 죽음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런 자신의 삶을 깨어 있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죄와 싸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죄와 싸우는 일을 하려면, 자신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샀는데, 건성으로 훑어보았던 책, 쟈크 엘룰의 [뒤틀려진 기독교]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믿음이라는 틀 속에 갇혀서 하나의 관념으로 굳어버린 것을 비판하면서, 실천하지 않는 관념은 썩어 냄새나 풍길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본래 기독교회는 실천적 삶을 지향하는 종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독교는 여러 단계의 왜곡을 거쳐서 잘 꾸며진 허상에 안주하는, 그래서 세상에 아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집단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은 계명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서(레 18:5, 느 9:29, 겔 20:11), 듣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대립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듣기만 할 뿐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합니다(겔 33:31). 예수님 역시 참된 신자란 듣고 행하는 자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눅 8:21)면서, 산상수훈의 마지막 말씀으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 비유는, 말씀을 듣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의 본문은 매일 매 순간을 의롭게 살기 위해서, 죄와 싸우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이란, 마음으로 하는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의를 따르는 구체적인 삶, 죄와 대결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따라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오늘 너는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