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심판이란 근본에 눈을 돌릴 때. / 계 18:9-20.

박성완 2019. 5. 26. 02:19

묵상자료 4562(2013. 11. 12. 화요일).

시편 시 135:5-8.

찬송 2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슷한 얘기는 일본에도 있습니다. 항아리를 사러 온 손님이 5엔짜리를 깎아서 3엔에 사갑니다. 그런데 곧 다시 오더니 좀 더 큰 게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10엔짜리를 깎아서 6엔에 삽니다. 그러더니 3엔짜리 작은 항아리와 처음에 낸 돈 3엔을 합하면 6엔이니 딱 이 큰 항아리 값이군요 하면서, 작은 걸 놓고 큰 걸 들고 갑니다. 주인도 계산이 맞다고 생각해서, 조심해가라고 인사까지 합니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계산입니다. 그런데도 이론상 어디가 왜 틀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숫자나 계산이 순간적으로 사람을 얼마나 바보스럽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우스개 얘기입니다. 러시아나 일본에만 있는 얘기도 아니지요. 우리나라에도 다른 많은 나라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습니다. 수능 날이면 가끔 이 얘기가 생각납니다. 시험에서는 누구나 맞다고 생각하는 답을 고릅니다. 하지만 시험문제는 항상 앞의 얘기처럼 분명 맞는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보면 아닌 예시문도 많습니다. 정답보다 더 많지요. 그래서 시험장에서는 분명 자신 있게 썼는데, 나와서야 그게 아니었는데 속상해지는 문제가 많습니다. 물건을 사고 판 거라면 되돌려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시험에서야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니 끝난 시험은 마음에서 빨리 매듭짓는 게 좋지 않을까? 시험장을 나서는 수험생들이 오늘만은 오직 후련함만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117일 방송>b.

 

2.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면 새로운 질서가 뒤따를 것입니다. 사실 저는 사후사(死後事)에 대해서, 보다 정확히 말하면 천국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그리고 고민하지 않는 편입니다. 까닭은 제가 가진 상식이나 경험과는 너무 동떨어진, 새로운 차원의 질서가 펼쳐질 것이라고 믿는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서 부대끼는 문제들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차고 힘겨운데,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사후사의 질서를 좇아간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인정하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에서 몇 가지 그런 단서들을 제공해 주고 있어서, 정신을 차리고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땅의 주류 세력으로 상징되는 바벨론이 새로운 세계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말씀하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끝이 났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땅에서 온갖 재미를 보고 영화를 누리게 했던 사업들, 장사를 해서 이득을 본 사람들이나 멀리 다른나라에까지 다니며 무역을 해서 큰 돈을 벌었던 사람들이 일시에 망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사람들이 견고하게 구축해 놓았던 삶의 틀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찰라와 같은 순간 속에서 이제는 영원을 살게 되었고, 허무하고 헛된 일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가치있는 삶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시시하기 짝이없는 곁 가지를 붙들고 애를 태우던 사람들이 이제는 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판의 장면을 주목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날이 와야 하겠습니다.

 

3. 어제는 오랜만에 미술관을 방문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제가 주례를 했던 백경찬 서울대 교수가 금속공예전을 열고 초대를 해 주었습니다. 제게는 아주 특별한 별미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