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흔들리는 신앙을 붙잡아 주는 신앙고백. / 눅 9:18-27.

박성완 2019. 5. 27. 02:27

묵상자료 6584(2019. 5. 27. 월요일).

시편 12:1-4.

찬송 8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곤충은 살아 있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 중의 하나지요. 그러면서도 때로는 인간을 위협하거나 찡그리게 만드는 존재로도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중엽까지도 곤충에 대한 연구는 생물학 분야에서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곤충을 학문의 범주 안에 끌어들여서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은 사람이 바로 장 앙리 파브르였습니다. 사실 파브르도 처음엔 곤충의 행동과 본능을 정밀하게 연구한다는 건 유치한 일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결론을 내렸지요. 곤충을 연구하는 건 하나의 보잘 것 없는 개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거대한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끝까지 곤충을 관찰할 것이며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먼지 티끌이 우주를 규명하는데 커다란 단초(端初)가 될 수 있듯이, 곤충도 생명이란 거대한 현상을 규명하는데 같은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거였습니다. 그러니 파브르는 평생을 곤충 연구에 몰두해서, 진화론 연구의 대가인 다윈을 감동시킬 정도였지요. 특히 파브르의 전기를 쓴 마르틴 아우어는 파브르 곤충연구의 남다른 뛰어남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죽은 동물을 수집하고 해부하고 비교하는 건 파브르의 연구법이 아니었다. 그 일은 파브르 이전의 살았던 연구자들이 했으며, 거기서는 배울 것이 많지 않았다. 파브르의 방법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 관찰을 조심스럽게 기록하는 것으로, 때로는 몇 년씩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파브르는 그런 작업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을 그냥 옮겨 쓰는 실수를 결코 범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스스로 관찰하고 검토하고 철저하게 사유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글을 썼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5. 20. 방송>

 

2. “베드로의 고백(18-21)”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22-27)”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기도하시던 주님께서 곁에 있는 제자들에게 하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대체로 세례 요한이라거나 엘리야라고 하거나, 옛날의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시자, 이번에는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고 대답했고, 주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런 대화는 요즘 유명 정치인들이 흔히 여론조사를 하는 듯한 얘기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아니면 자기 관리나 그 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인기관리를 하는 연예인 부류의 모습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옛 선비들처럼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지는 않더라도, 몸과 마음을 여미고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물음만큼 중요하고 중요한 물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르게 아느냐, 아니면 알지 못하느냐 만큼 삶의 방향성이 달라질 그 무엇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의 여론이나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척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질문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는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셈이 되었다. 그는 정곡을 찌르는 답변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런데 평행귀인 마 16:16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이런 고백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마태 기자는 밝히고 있습니다(17). 그러니까 저 유명한 기독론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시라는 신학 이론 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과 그 때문에 생기는 흔들리는 신앙인들을 만나곤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신적 인격과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 말입니다. 우리가 한 시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신조)는 바로 이 점을 그 중심에 두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