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종말론적으로. / 마 24:32-44.
묵상자료 4597호(2013. 12. 17. 화요일).
시편 시 144:9-11.
찬송 10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청년이 있습니다.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요. 고등학교를 마치자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를 각오했습니다. 하지만 신체검사에 떨어졌습니다. 유니언 칼리지에 입학했지요. 대학에서는 학과 수업보다는 도서관에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거기서 인문학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독일에 있던 큰 형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독일로 가서 1년 열흘 형의 흔적을 찾고 그리워하면서 보냅니다. 귀국해서는 새로운 결심을 한 듯 고향의 한 법률 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일하면서 법학을 공부해 1871년 마침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합니다. 21살 때 의 일이었습니다. 앞날이 촉망되는 나이었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모두의 축하와 기대 속에서 변호사로써 첫 번째 사건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수임사건이 집세를 내지 못하는 미망인을 강제로 쫓아내달라는 소송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그 청년 에드워드 벨로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년 9월 20일 방송>a.
2. 어린 시절, 뜬소문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큰 별이 지구와 충돌하게 되어 바닷물이 온 마을을 다 덮게 될 것이라는 등의. 교회에서는 곧 주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하며 <고대가>를 애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종말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종말 기대는 아담이 타락한 이후 계속되어온 주제였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강조에도 불구하고 식상한 나머지 귓등으로 흘러버리는 단골 메뉴정도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종말 풍경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밭에서 일하던 두 농부 중에서 한 사람을 데려감을 당하나, 다른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며, 같은 맷돌에서 두 여인이 맷돌질을 하고 있는데, 한 여인은 데려감을, 다른 여인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종말을 준비하기 위해서 따로 박태선의 전도관이나, 오대양 사건을 일으킨 박순자처럼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늘 하던 대로의 일상을 살아가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중에 하나는 데려감을 받고(구원), 다른 한 사람은 버려둠을 받는다(멸망)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종말을 제대로 준비하며 사는 일이란, 다름 아닌 매일 매 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요즘 지난 부산 WCC대회의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부산과 광주지역에서는 반 WCC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 어제는 1시간 반 가까이 이번 WCC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신 분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WCC의 역사를 잘 정리해 주셨고, WCC가 힘쓰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고 또 아쉬운 대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타종교나 서로 다른 이념까지 품어주고, 소수자들의 인권이나 권익을 용납하는 등, 품이 넓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독교의 정체성을 흐리게 하는 문제들을 만들어 왔다는 점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는 기독교회의 정체성을, 다문화 다종교 시대에 대화를 방해하는 배타적인 닫힌 주장쯤으로 생각한 나머지, 아예 “예수 만”이라는 고유의 강조점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연 “예수 만”이 타종교와의 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배타적 주장일까? 오히려 그 주제야말로 끝까지 기초가 되는 기독교의 특성으로, 타종교와의 대화에서도 분명한 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3. 오늘은 묵상식구 전의찬 교수님이 <세종대학교 기후변화 특성화 대학원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프레스센터에서 여신다고 합니다. 전 교수님의 꿈인 “Bye, CO₂!”가 전 국민의 높은 이해 속에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끝없는 인간의 탐욕에서 해방되어야 하겠지요.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