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19. 6. 2. 부활절 일곱째 주일] 하나 되기를 기도하신 주님. / 요 17:20-26.

박성완 2019. 6. 2. 01:16

묵상자료 6590.

시편 133:1-3.

찬송 48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콧노래를 불러본지 얼마나 되셨나요? 콧노래는 기분이 좋을 때 나오지요. 무엇인가 안에서 흥이 날 때 저절로 터집니다. 쉼 없바쁘기 만한 일상, 무작정 질주만 하다보면 잃는 것이 많습니다. 여유도 건강도 행복도 그리고 콧노래마저도 잃고 맙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19520일 방송>

 

2. 오늘은 부활절 일곱째주일로 복음서의 말씀 요 17:20-26을 본문으로 하나 되기를 기도하신 주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어느 시대보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란 무엇이며, 결국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삶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주님이 기도하신 하나 됨이란 모든 사람이 인격적인 개체를 기대하신 것입니다(20-22).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특징은 극도로 세분화되고 개인주의가 발전한 시대라 말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목수 한 사람이 집을 지었는데, 요즘은 수 십 종류의 전문직 기술자들이 동원되어야 집을 한 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 됨의 모델로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주님이 서로 안에 있다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에 라는 의미는 인격적인 면전 앞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나 주님은 서로 안에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역할을 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가 될 때에만, 건강하고 바람직한 공동체로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하나란, 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23-24).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갈 때 혼란과 무질서가 예상되고, 온갖 오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에는 거대한 하나의 공동체를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성과 역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때입니다. 그 좋은 예가 교회라는 공동체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이런 교회를 몸의 지체(肢體)에 비유하였습니다. 몸에는 100가지가 넘는 지체가 있지만, 한 몸을 위해서 일사불란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유행했던 말 중에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제 구실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주님은 남편과 아내, 지도자와 백성이 제 구실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하나란,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함께 아는 것에서 이뤄짐을 말씀하십니다(25-26).

주님의 간절한 소원 가운데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진리를 아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과,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세상 사람들 안에 있다는 것과, 예수님의 사랑 역시 그들 안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바벨탑 사건 이래로(11:1-9) 세상 사람들은 언어의 다양함으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 모든 문제풀이의 첫 단추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 아버지시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알게 될 때, 올바른 우주적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음을 기도하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