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 사는 삶. / 눅 9:51-62.

박성완 2019. 6. 3. 01:31

묵상자료 6591(2019. 6. 3. 월요일).

시편 15:4-5.

찬송 3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건축과 권투는 비슷하다. 아무에게도 도움 받지 않은 채 홀로 서기를 해야 해서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매 작업마다 안간 힘을 다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어려서부터 할머니 집에서 자랐습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권투를 하면서 돈을 벌었지요. 그러다 세계적인 건축가였던 르꼬르즈의 건축물 사진에 큰 감동을 받고, 독학으로 무작정 건축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 독학의 공부도 이후 직접 나선 건축일도 그는 권투하듯이 임했다고 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끝이 나고 마는 링에 오른 듯이 임했다는 거지요. 권투는 때로 비정하고도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상대가 사람이 아닌 어떤 일이나 목표일 땐, 권투선수 같은 마음과 자세는 넘어지려는 마음을 일으켜주고 힘을 주지요. 상대를 공격하는 자세가 아니라, 오직 스스로를 일으키는 격려의 자세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 일이나 목표 앞에서, 오늘은 안도 타다오의 권투선수 시절과 그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서, “건축과 권투는 비슷하다 아무 에게도 도움 받지 않은 채 홀로서기를 해야 해서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매 작업마다 안간힘을 다했다.” 그의 책 <나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한 마디에 물들어 봅니다.<KBS FM 1 가정음악 2019. 5. 25. 방송>

 

2. “사마리아 동네의 냉대(51-56)”예수를 따르려면(57-6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두 번째 단락입니다. 크리스천(Χριστιανους)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제자, 혹은 작은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11:26). 이런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오늘 본문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마침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은 주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 따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자, 주님께서는 여우의 굴과 새의 보금자리를 빗대시며 당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안한 대답이십니까? 이번에는 다른 제자가 자신의 아버지 장례를 치른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제자는 자신의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한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주님의 대답은 한결같이 엇박자를 놓는 말씀이셨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라든지, 쟁기를 잡은 다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요즘도 신앙촌과 장막성전 비슷한 꾐에 빠져서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아서 뉴스에서 열외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나 작은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건강한 신앙생활이란 뜨겁게 날뛰는 열광주의도, 공중을 훨훨 날아다니는 신비주의가 아니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에서 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은퇴 후 시작한 생활신앙 운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또는 작은 그리스도로 살아가자는 목표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이마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띠를 띠고 사는 것도 아니고,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고, 그 말씀을 조용히 삶에 적용하고 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힘든 삶을 짊어지고 비탈길을 오르는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위로와 사랑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나누는 일입니다.

 

3. 어제 설교한 주성 농인교회에서 후원하는 멕시코 우 상배 선교사님이 오셔서 선교보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