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19. 6. 16. 삼위일체 주일]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나님. / 요 8:48-59.

박성완 2019. 6. 16. 02:19

묵상자료 6604.

시편 18:17-19.

찬송 41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베토벤은 심지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우산이나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성곽의 큰 공원을 산책했다고 합니다. 산책하지 않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생각이 막히고 영감이 말라 바닥이 났을 때, 산책은 좋은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아무리 몸이 지쳐 있어도 생기를 가져다줍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19522일 방송>

 

2. 오늘은 성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성경의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일체가 되신다는 신학이론입니다. 삼위일체 주일부터 교회의 계절 6개월이 시작됩니다. 교회가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들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가르친다면, 세속에 쉽게 떠밀리는 그런 부평초 같은 신앙생활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입니다.

 

선재(先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48-51).

성경에는 선사(先史)시대를 말씀하는 내용이(1-11)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가 역사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시대를 신화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역사시대에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히 선사시대에 실존하셨다고 밝힙니다. 이 점이 석가모니나 마호멧과의 큰 차이점입니다. 그들은 역사시대의 존재들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점 때문에 성경을 잘 알고 있다는 유대인들과 심각한 충돌이 불가피했습니다. 그들은 역사 이전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하셨고, 서로 창조와 섭리에 동참하셨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1:26, 11:7).

 

아브라함보다 위대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52-53).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모든 신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인생의 최고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 하나를 주목해 보았고, 그 의미를 깨우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힘썼던 것입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보여주는 역할로 충분한 일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가령 창 21장에는 아브라함이 자식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뜻 모를 희생 제물로 이삭을 바치게 된 아브라함은 고뇌의 사흘 길을 걷게 되고 마침내 모리아 산 반석에 장작더미를 쌓고 아들을 결박해서 죽이려했으나, 하나님은 그 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 자신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서는 눈을 감고 실행에 옮기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림자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잘 알게 하시는 유일한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54-57).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아는 일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시는 단 한 분이 계시는데 바로 성자 예수이십니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성품과 의지 그리고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속속들이 꿰뚫어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유는 함께 역사 이전부터 계셨고, 창조에 동참하셨으며, 온 세상을 구원하는 계획에 참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알기 위해 우리가 하늘 꼭대기로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생활로 충분합니다. 교회력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주목하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제대로 보여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