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지는 삶을 실천할 수 있기를. / 눅 14:1-11.
묵상자료 6609호(2019. 6. 21. 금요일).
시편 18:35-38.
찬송 33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생각난 김에 나도 라면을 좀 사가야 겠다. 오랜만에 마트에 들린 남자는 라면 판매 코너로 쇼핑 카트를 밀고 갑니다. 그 사이 새로운 라면이 많이도 나왔네. 평소에 즐겨먹든 라면을 카트에 집어넣고도 남자는 신상 라면들을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가 문득 평소보다 사람이 많다고 느끼는데요. 다른 사람들도 다 나 같은 느낌인가 하면서 남자는 얼마 전 미국 여자 프로 골프 대회에서 우승한 우리 선수의 인터뷰를 떠올립니다. 자그마치 100만 달러의 우승상금이 주어진 대회. 우승 상금으로 뭘 할 거냐는 물음에, 그 선수는 한국 라면을 먹겠다고 답했고, 남자가 쇼핑 중에 라면을 떠올린 것도, 아마 그 영향일 겁니다. 신인 선수인데다가 여자 골프 중 가장 높은 상금이 걸린 대회였고, 어려운 형편을 딛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선수의 개인사까지 더해지면서, 언론의 관심이 높았는데요. 우승하자마자 라면을 먹겠다고 답한 이유를 남자는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위해, 대회가 끝나면, 몇 위 안에 들면, 우승을 하면 같은 조건을 달고,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절제해왔다고 하는 건데요. 어린 선수의 다부진 결심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기꺼이 기우린 노력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보통의 아침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9년 6월 10일 방송>
2. “수종 병자를 고치신 예수(1-6절)”와 “낮은 자리에 앉으라(7-1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낮은 자리에 앉아라. 너무 자주 그리고 흔하게 쓰는 말이어서 식상하기 쉬운 주제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섬긴다는 말은 기독교회의 주제를 넘어서 정치가들도 입에 달고 사용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과 행동이 같지 않다는 데에 주목해야 합니다. 실천하는 말인가 아닌가를 검증하려고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을 느껴야 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이런 엄청난 용어를 쉴 새 없이 주절거리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무책임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요즘 치과치료를 받는 중인데, 남자 의사와는 달리 여자 의사들은 말이 너무 가볍다는 느낌을 받고 합니다. 빈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인데, 속이 빈 강정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리에 앉는 일은 화육하신 예수의 삶이었고 기독교회의 정신입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일이나, 출세의 변방인 갈릴리 농어촌에 삶의 둥지를 트신 일이나, 평생을 가난하고 병들고 억눌린 삶을 사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속에서 사셨던 바로 그 모습이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과 인접하고 있는데, 가까이 하려고 다가서 보지만, 서먹한 기분을 금할 수 없는 점입니다.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분들, 좌식 식탁을 쓰며 하루 종일 TV만 쳐다보며 무표정한 적막한 생활에 익숙한 분들이고 보니, 그분들 눈에는 제가 화성에서 온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따뜻하게 다가서도 도무지 그 거리감을 좁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자주 농사일에 무지한 것을 핑계 삼아 다가 서 봅니다. 이렇듯 낮은 자리는 말로 땜질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봅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살지 않으면 이해될 수도 없는 멀고 먼 거리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간디나 만델라가 그리고 우리 주님이 위대한 섬김의 삶을 사셨던 것을 고백치 않을 수 없습니다. 동시에 낮은 자리에 내려가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낮아지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겠다 생각해 봅니다.
3. 오늘 김필승 목사님 내외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합니다. 권영숙 사모님 내외에 이어 묵상식구로는 두 번째 순례길인데, 감동적인 순간들을 전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