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인간의 영화는 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을. / 눅 21:5-19.

박성완 2019. 7. 19. 00:03

묵상자료 6637(2019. 7. 19. 금요일).

시편 24:1-6.

찬송 35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읽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우리 마음에는 무언가가 기록되고 또 기록되고 있습니다. 물의 표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눈송이, 작은 나뭇잎들의 잔잔한 무늬를 그리듯, 혹은 바윗돌이나 세찬 바람에 크게 출렁이듯, 마음은 항상 움직이고 반응합니다.” 그렇게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은 읽고 싶어도 잘 안 읽힐 때도 참 많습니다. 심지어 내 것인 내 마음 조차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읽으려 하지 않는 건, 마음 없고 감정 없는 무생물로 살아가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이지요. 진 은형 시인이 최근에 펴낸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에서 질문합니다. “내 마음에 씌여진 것을 내가 읽지 않다니, 얼마나 무심하고 무정한 독자일까요?” 라고. 내가 내 마음에 무심하고 무정한 독자가 되면, 다른 사람들 마음에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한 내 마음에도 무심하고 무정해지겠지요. 그건 참 위험한 일이니 떨어지는 빗방울에 반응하듯, 마음 읽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은 진 은형 시인의 한 마디 누군가가 읽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우리 마음에는 무언가가 기록되고 또 기록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씌여지는 그것들을 내가 읽지 않는 다니, 얼마나 무심하고 무정한 독자일까요?” 이 한마디에 독자로써의 마음을 새롭게 들여다봅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4. 21. 방송>

 

2.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5-6)”재난의 시작(7-19)”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제가 목회할 때 성지 순례를 하고 돌아오신 한 장로님이 소감을 묻는 교우들에게, “로마 교황청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을 구경하였는데, 혹시 면죄부를 팔아 지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건축물이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서너 차례 방문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 아름다움을 숨길 수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보여주었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감탄을 들이신 주님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이른바 주후 70년에 유대인과 로마군 사이에 있었던 <유대전쟁>의 결과를 두고 하신 말씀일 수도 있고, 더 길게는 종말의 날에 세상 모든 것들이 다 함께 멸망할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물도 돌 하나도 제자리에 얹혀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인생무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란 없습니다.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지고 말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이로의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도 서서히 붕괴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의 작품들 앞에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영화는 덧없는 것이고 허망하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인간의 모든 금자탑들에게 다 적용되는 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땅위에서 큰소리치며 자랑하는 인간의 모든 업적들이 도토리 키 재기 하는 일에 불과하며, 열정을 쏟아 붓는 인간의 모든 노력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화려했던 성전은 이슬람의 모스크로 바뀐 지 2천년이나 되었고, 벽 하나만 덩그랗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방향을 돌리고 눈을 뜰 때가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가능성이란 사람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의한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