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아보라고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 눅 23:44-56a.
묵상자료 6654호(2019. 8. 5. 월요일).
시편 28:6-7.
찬송 35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색연필 모으기가 취미인 여자. 어디를 가도 그 지역에서 파는 색연필을 기념으로 살만큼 애정이 있었습니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색이 모두 다르게 느껴져서 모으는 즐거움이 있었던 거지요.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색연필 예찬론을 늘어놓습니다. “갖고 다니기도 편하고 색도 예쁘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참 좋아. 종이에 쓱쓱 색칠할 때 그 기분 정말 최고거든.”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야, 우리가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여 필통이 꽉 차게; 보이네. 무겁지도 않냐? 학생 때도 안 하던 취미생활을 다 하고 그래.” 이런저런 말이 오갈 때 앞에 있던 친구의 옷이 몇 년째 그대로라는 걸 발견한 여자. “근데 너는 3년째 똑 같은 옷만 입고 다니네. 검정색 옷. 이거 올해 입은 거지?” 하고 묻자, 격분한 친구의 말, “무슨 소리야. 다 같은 검정색이라고 해도 다 다른 옷이야. 그리고 이 옷은 어제 산거라고. 나에게는 다 달라 보이는데, 똑 같아 보여? 지난번에는 단추가 이쪽에 있었는데 이 옷은 여기에 있지 않아.” 함께 터져 나오는 웃음들. 색연필을 좋아하는 사람도 검정색 옷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 안에서 다름을 찾아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던 겁니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자는 결론으로 그날의 모임이 마무리됐다는 이야기. 남들이 하니까 유행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뭐라든지 자신의 취향에 집중한다는 것. 그 자체가 소소하지만 소중한 나만의 즐거움이겠지요? 바쁜 일상이지만 취향을 찾아 몰입하고, 즐거움 누려보고 싶은 보통의 아침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8년 10월 19일 방송>
2. “숨을 거두신 예수(44-49절”과 “무덤에 묻히신 예수(50-56절)”을 읽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달린 사람에게나 지켜보는 사람에게나 매우 고통스럽고 지루한 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못을 박아 나무에 매달게 되면 보통 2-3일이나 되어야 숨을 거두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다리를 꺾거나 예수님처럼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기 때문에 훨씬 더 빨리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린 시간 오전 9시(제3시)에 못을 박혀 세워지고, 오후 3시(제9시)에 숨을 거두셨으니까 6시간을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6시간 동안 최후의 시간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묘사하기를 세상은 태양마저 빛을 잃고 어두움으로 덮이고, 성전 휘장의 한 가운데가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두 쪽으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주님은 그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의 영혼을 맡기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연현상도 그렇지만, 주님의 마지막 기도 역시 매우 인상적입니다. 누구나 그런 죽음을 맞이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느 사람과 같이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다행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제공한 무덤은 새로 만든 무덤이었다고 했습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이라고 붙인 모임이었습니다. 사는 것에 너무 골몰하느라 죽음을 뒷전에 두지 말자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죽음을 꺼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벌써 30년도 훨씬 넘은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 말을 잘 들으셨던 장로님 한 분을 모시고 그 창립 모임에 참석했는데 유익한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그 후로 열심히 자원봉사 모임에 다니셨고, 나중에는 호스피스 훈련을 마치신 후 서울대 병원 자원봉사자회 회장으로 여러 해 봉사하셨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우리 모든 인생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 의례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죽는 것만은 조금만 주의를 기우리면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로 사람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한 나라의 민족으로, 한 가족의 일원으로 제대로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구원이란 말의 좁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 사이에서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건강하고 배우고 출세하는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들을 목적인양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데 우리 인간의 비극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 사람다운 삶을 항상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주어진 때와 자리에서 마땅히 사람노릇을 하는 일 말입니다. 사람노릇을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이 가진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많이 누린 사람들이 온갖 추태를 부리며 살고 있다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허락된 축복을 헛되게 사용하면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