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갈이 자신의 수호신을 이용했던 고사에서 배우는 교훈. / 삼상 19:1-17.
묵상자료 6662호(2019. 8. 13. 화요일).
시편 30:4-6.
찬송 4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4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계셨는지요. 그리고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요. 2004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작가는 파울로 코엘료였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1947년 8월 2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일로의 안정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30대 후반까지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차제였지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에 심취해 작가를 꿈꾸었습니다. 17살 때에는 음악 연주와 연극에 심취했다고요. 그러니 누구보다 일찍부터 천재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을 구가하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를 꿈꾸는 그와 그 꿈을 반대하는 부모님 사이의 불화는 크고도 심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세 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대 때에는 만화잡지를 창간했지만, 잡지 성향 때문에 오히려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코엘료는 줄기차게 작가를 꿈꾸었지요. 서른다섯 살인 1982년 마침내 첫 소설인 [지옥의 기록]과 [흡혈귀의 실용 매뉴얼]이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문단도 대중도 아무도 주목해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다 한들 그는 당시엔 유명 음반회사의 중역이었지요. 그러니 무명 작가여서 생활고를 겪는다든지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7월 11일 방송>a.
2. “요나단이 다윗을 감싸주다(1-8절)”와 “남편을 살린 미갈의 슬기(9-17절)”을 읽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오늘 일화는 다윗과 그의 처 미갈 사이의 얘기입니다. 사실 사울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부마 자리를 약속했지만, 사울은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였고, 그녀를 이용해서 다시 한번 더 부마자리를 약속하고, 블레셋 사람 100명의 양피를 가져오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기를 바라는 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였고, 사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삼상 18:27).
문제는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 왕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악사 역할을 하던 다윗을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타게했고, 코앞에 앉은 다윗을 창을 던져 죽이려 했지만, 그 창이 빗나가 다윗은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불행랑을 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병사들에게 명령 다윗의 집에서 지키다가 아침에 죽이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를 알아낸 미갈이 다윗을 권유해서 병사들의 눈을 피해 창문으로 도주케 합니다. 미갈이 다윗이 와병중이라 말을 하고, 다윗의 침대에 염소털로 짠 수호신을 눕혀놓은 얘기가 나옵니다. 본문에서 난데없이 수호신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는 쉐마교리와 십계명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수호신을 섬길 수 있다는 말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호신 얘기는 아주 오래전에 야곱의 아내 라헬이 남편에게 부당한 처우를 해 주던 아버지 라반의 수호신을 훔쳐서 도망친 고사(古事)에도 등장합니다(창 31:19). 그러니까 유일신 야훼를 섬기면서도 뒤로는 수호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은, 유대인들에게도 엄격한 하나님 신앙을 표방하면서도 미신을 섬기는 이중적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던 아론처럼 말입니다. 야훼 신앙이 뿌리내리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확고한 신앙이 뿌리 내리는 데 까지는 하나님과 우상을 오가는 부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어느 한 순간의 깨우침으로, 아니면 어떤 특별 체험으로 완전무결한 신앙의 경지에 오르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위인들이 그 점을 암시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그 인간의 약점을 잘 아시고 이해하시지 않으실까요?
3. 산티아고 순례 길에 오른 김필승 목사님 내외분은 두 달 여일만에 건강하게 산티아고에 도착하셨다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