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할 때면. / 삼상 31:1-13.
묵상자료 6672호(2019. 8. 23. 금요일).
시편 32:1-4.
찬송 54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무엇보다 돈 벌기 싫어서/ 나도 거지가 되고 싶은 적이 있다.” 돈 싫다는 사람 봤냐고 하지만, 괴테가 “강한 사람도 돈이 없으면 절반은 병든 것”이라고 말한 걸 보면, 돈이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꼭 필요하다는 뜻 같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먹고 싶은 음식과 입고 싶은 옷, 안락한 집과 좋은 차, 즐거운 여행 같은 물질 뿐 아니라, 독립과 자유, 안전 교육과 품위 시간처럼,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확보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물질 뿐 아니라, 타인 더 나아가 삶의 중요한 요소들과 관계를 맺는데도 돈이 매개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라고 하니,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화폐경제 안에서, 그만큼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도 들립니다. 게다가 돈 없는 사람이 돈 버느라 소모한 자유와 품위, 시간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살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 같지 않아서, 그만 밥벌이가 지긋지긋하고 돈 벌기가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돈은 필요해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즉석 복권을 긁어보지만, 밥벌이를 그만두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 세상에 어디 나 혼자뿐일까요? “우선 무엇보다 돈 벌기 싫어서/ 나도 거지가 돼 보고 싶은 적이 있다/ 한데 얻어먹기는 더 어려울 듯 했다/ 성자가 되고자 했다/ 얻어먹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폼은 좀 나니 수월하지 않겠나/ 한데 단체로 너무 일찍 일어나는 게 문제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요/ 늦게 일어나도 된단다/ 아무 것도 자지도 않고 살고 싶은 소망이 있긴 있었다/ 게을러서만은 아닌 까닭도” 장석주 시인이 쓴 웃기고도 슬픈 글입니다. 그는 거지도 성자도 되지 못했습니다. 돈 벌기 싫다고 밥벌이가 지긋지긋하다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까 위안이 좀 됩니다. 게을러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가끔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속됨 없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쩜 세상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어 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우리들 마음한 구석에 남몰래 숨겨둔 소망이 아닐까요? 비현실적이라서 차마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는 그 소망을 슬쩍 들춰보며, 오늘도 돈 벌러 나갑니다. 나에게 식구들에게, 하얀 별이 될 밥을 벌러 나갑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년 4월 16일 방송>
2. “길보아 싸움에서 사울이 전사하다(1-13절)”을 읽었습니다. 한 인간을 평가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참된 평가는 그 사람의 생전이 아니라 사후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직류전기와 교류 전기를 놓고 일생을 전류전쟁을 하였던 에디슨과 테슬라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에디슨은 화려한 생을 누렸음에도 그는 말년에 테슬라와 틀어진 것을 후회했으며, 테슬라를 존중하지 않은 점을 뉘우쳤다 합니다. 물론 테슬라는 사후에야 비로소 인류를 위해 훨씬 더 귀한 공헌을 인정받았고 말입니다. 에디슨은 생전에 자신의 재력을 동원해서 학자들을 매수해서 테슬라를 이길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사울 왕 역시 기스의 아들로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부름 받았을 때 그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겸손한 인물이었습니다(삼상 9:21). 그런 그가 왕이 누리는 권력에 취하자, 하나님의 명령까지 듣지 않는 교만한 왕으로 바뀌었으며, 2인자라 여겨지는 다윗을 죽이려는데 남은 귀한 시간을 헛되게 쓴 것입니다.
사울의 마지막을 기록한 사관(史官)들은 그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을 말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그의 패배는 이스라엘 왕이 보여주어야 할 야훼 하나님 신앙이 퇴색해 버린 것을 말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아들 3형제가 전쟁터에서 죽고, 자신도 도망가던 길에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자, 자신의 부관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하자 스스로 자신의 칼에 자결한 것입니다. 어떤 절망 앞에서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은게 가장 큰 흠결입니다. 신앙 없는 초라한 한 사내로 일생을 마친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3. 어제 아산에 들려 김장 배추와 무를 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잘 키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