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 진심을 다하기. / 삼하 3:22-39.

박성완 2019. 8. 28. 01:16

묵상자료 6677(2019. 8. 28. 수요일).

시편 33:8-10.

찬송 49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한 마디에 물들다>. 오늘은 루이스 스머즈의 [용서의 기술] 나오는 한 마디입니다. “새치기에 약 오름 같은 사소한 일들은 그냥 넘기고, 용서는 깊은 상처를 위해 남겨놓는 게 현명하다.” 이 한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아직도 마음을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 친구를 용서하고 그냥 모른 척 넘어갈지, 아니면 친구 명단에서도 마음에서도, 영영 제외할지를 아직도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문득 문득 창밖을 보면서 그 날을 다시금 떠올려 보곤 합니다. 일주일 전이었어요. 그날은 자신이 친구들에게 저녁을 사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갑에도 마음에도 무엇보다 여유를 한껏 챙겨들고 약속 장소로 갔지요. 약속 장소가 에어컨 때문에 꽤 추웠습니다. 그래서 가방 속에 늘 넣고 다니던 커다란 머플러부터 꺼내서 어깨에 둘렀지요. 그걸 보고 친구들 모두 머플러에 대해 한 마디씩 했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친구도 그게 자신의 머플러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 머플러가 무심결에 어깨에서 미끄러져서 바로 옆 통로에 떨어 진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도록 자신은 얘기에 열중하느라고 전혀 모르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맞은편에 앉았던 그 친구가 화장실엘 가느라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곤 통로를 지나는데, 하필 그 머플러를 그대로 건너뛰는 걸 보게 됐습니다. 통로에 넓게 펼쳐진 채 떨어져 있었으니 안 보일 리도 없었지요. 오히려 제대로 지나가려면 줍고 지나가야 했습니다. 더욱이 친구의 머플러가 떨어져 있는 건데 그걸 집어주지 않고 그냥 건너 뛴 채 지나가다니. 설사 친구의 것이 아니어도, 그런 상황에서는 남의 것이라도 주워주고 지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 하필 혼자만 목격한 그 장면이 깊은 상처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827일 방송>a.

 

2. 오늘 본문은(22-38) 어제 말씀의 연장으로,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다윗을 도우려다가 어떻게 억울하게 죽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때 아브넬은 다윗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던 요압에게는 더욱 그랬습니다. 까닭은 요압과 아브넬 사이에 있었던 이른바 기브온 전투에서 요압은 그의 사랑하는 둘째 동생 아사헬을 요압의 창에 맞아 죽었기 때문입니다(삼하 2:12-32). 그런 아브넬이 제 발로 다윗을 찾아왔는데, 왕이 그를 아무 일 없는 듯 돌려보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압은 왕에게 항의를 할 뿐 아니라, 정탐하러 왔던 게 분명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곧 바로 군사를 풀어 아브넬의 뒤를 쫓아 사로잡았고, 헤브론으로 돌아온 그들은 은밀한 얘기를 나눌 생각인양 유인해서 아브넬을 살해하였습니다. 모두가 다윗이 전혀 모르는 가운데 이루어진 복수극이었습니다.

   평화적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통일하려던 다윗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브넬이 다윗을 도우려는 선의(善意)가 복수극의 희생자로 알려지게 될 경우, 다윗의 진심과는 다르게 평화 통일은 어려울 수 밖이었습니다. 다윗은 먼저 요압과 전 군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허리에 두르고 아브넬의 상여를 앞서가며 곡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왕 스스로 상여 뒤를 따르며 슬퍼할 뿐 아니라, 아브넬의 무덤 앞에서는 목을 놓아 울었다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넬을 위한 조가(弔歌)를 지어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아브넬을 죽인 자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내릴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다윗의 모습은 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고, 백성들 역시 다윗 왕의 처신에 대해서 좋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주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도 왕의 행보에 일말의 의혹도 일어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쓸 뻔 하였던 아브넬의 살해 사건은 다윗과는 무관했음을 분명하게 해명하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통합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런 행위는 그의 진심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