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聖君도 聖賢도 그리운 시대. / 삼하 14:1-20.

박성완 2019. 9. 10. 01:50

묵상자료 6690(2019. 9. 10. 화요일).

시편 35:4-6.

찬송 25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울발 목포행 기차 안, 노 부부 두 쌍이 마주앉아 있습니다. 분명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아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 건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10여분쯤 지난 뒤였습니다. 같은 시각에 같은 열차를 타고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열어지는 마음을 그들에게서 엿봤습니다. 더 더군다나 두 노부부가 기차를 탄 이유가 같았습니다. 마치 오랜 세월 이웃으로 살아온 사람들처럼 보이는 그들, 그러나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분명 처음 만난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였습니다. “서울에 사는 아들네에서 추석을 쇠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역귀성이 더 편한 것 같아요. 그동안 바쁘게 사는 애들이 피곤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저도 역귀성이 편한 것 같습니다.” “시간 많은 한가한 노인네들이 움직이는 것이 마음 편하지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처음 만난 할머니 두 분이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두 분은 말을 아낀 채,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넌지시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바깥양반은 역귀성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조금 전까지 역귀성이 더 편하고 좋다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셨던 또 한 분의 할머니, 역귀성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에 반색을 하며 맞장구를 치셨습니다. “제 남편도 그래요.” 생각이 같다는 것, 마음을 급속도록 가깝게 해 줍니다. 어느 새 두 분의 할머니는 서로 가슴을 활짝 열고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자식은 품안의 자식이라는 옛 말이 딱 맞아요. 자기들 아쉬울 때나 부모 찾지요. 손자들도 자주 봐야 정이가지요. 그래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두 노 부부 다 자식들에게서 서운한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 두 분이 생면부지,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자식들 흉을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 두 분은 가만히 듣고만 계셨습니다. 아마 고향에 가시면 두 노부부다 자식들의 대접이 얼마나 극진했는지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실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5920일 방송>

 

2. “압살롬이 돌아오다(1-20)”을 읽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가 다르다는 것쯤은 경험으로 배우고 있을 것입니다. 자식들은 자신의 현실을 부모는 그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윗에게 압살롬은 사랑스러운 자식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것이 자랑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아들이 형을 죽이고 부모를 피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마음 한 구석을 텅 비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앞에 모범을 보여야 할 왕의 신분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망설이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요압 장군은 꾀를 내어 드고아 여인에게 상황극을 연출하게 합니다. 자신의 두 아들이 싸우다가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이게 되자, 온 문중이 일어나 그 살인자 아들을 내 놓으라고 법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둘을 다 잃을 처지가 되었다며, 왕께서 자신의 남은 아들을 구해주시라는 것입니다. 사정을 들은 왕은 여인에게 선처를 약속했으나, 여인은 자신의 남은 아들을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그리 못하도록 맹세해 달라는 것입니다. 얘기를 다 들은 왕은 마음에 짚이는 데가 있어 이 일을 시킨 사람이 요압이 맞느냐고 진실을 부탁합니다.

   우리들 인생사에서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처럼, 자신의 문제만은 뻔히 해답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단호하게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요압은 다윗 왕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었으며, 진심으로 왕을 돕고자 드고아 여인을 상황극에 끌어들인 것입니다. 물론 위험한 수작이었지만, 요압은 왕의 성정(性情)을 잘 알고 있던 터라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고아의 여인의 입을 통해서, “과연 임금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천사 같아서 모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라고 실토를 합니다. 훌륭한 왕과 그 왕을 보필하는 훌륭한 신하를 보는 것이 흐뭇하고 그 지혜로움에 박수를 보냅니다. 성군(聖君) 밑에서는 성현(聖賢)들이 나오는 법인지 모르겠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힘써 할 일은 스스로 무덤을 팔 일이 아니라, 연약한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