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혈입성한 압살롬과 피난길에 오른 다윗 왕. / 삼하 15:19-37.
묵상자료 6693호(2019. 9. 13. 금요일).
시편 35:14-16.
찬송 41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약속 시간은 공연시간보다 1시간 일찍이었습니다. 그러나 약속 시간의 10분 정도를 남기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조금 늦게 출발한데다가 길이 막혀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다고. 가을날 오후, 한 시간 남짓 여유로운 시간이 뜻하지 않게 주어졌습니다. 무엇을 할까 두리번거리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모자를 쓰고 배낭을 메고,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운동화를 신고,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무데나 주저앉기 위해 입은 듯 편안한 옷차림을 한 남자. 남자의 손에는 반쯤 접힌 지도가 있었습니다. 아마 지도를 보다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던 중 갑자기 한 시간 정도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 무얼 할까 고민하던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 같습니다. 낯선 땅에서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볼 땐,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행인보다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합니다. 등에 배낭을 메고 있던 그 남자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덕수궁으로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덕수궁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남자의 지도, 창경궁과 시청 앞, 인사동을 다녀온 듯 했습니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무엇을 보러 왔느냐? 이곳에서 어디를 돌아보았느냐? 그리고 어디를 갈 계획이며 어느 정도 머물다 떠날 계획인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배낭여행 족이고, 이곳에 도착한지는 사흘이 되었고, 그동안 남산 한옥마을과 미사리 카페 촌도 가 보았고, 한강 유람선도 타 보았으며 남대문 시장에도 가 보았다고. 그리고 오늘은 고궁을 순례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서울을 둘러보고 나면, 보성 녹차 밭, 보길도 등을 둘러보고 떠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을 해 주던 남자. 마지막에 두 가지를 물어보고 떠났습니다. “당신은 다 가봤나요? 혹시 추천해 줄만한 곳, 당신이 아끼는 장소는 없나요?” 남자가 묻고 떠난 이 두 가지 이야기가 날이 바뀌었는데도 지워지지 않고 내게 또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당신 바로 곁에 있는 좋은 곳을 놔두고, 혹시 먼 곳에 있는 좋은 곳만 동경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5년 9월 29일 방송>
2. “압살롬의 반란(19-37절)”을 읽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사람의 마음처럼 간사한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 마치 토끼잡이가 끝난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세상인심이라면,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었습니다. 이른바 결초보은(結草報恩) 하는 신하들이 그들인데,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 궁궐을 고스란히 내어 주고 피난길에 오른 다윗을 따라 나서겠다는 외인부대장 잇대나,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다윗의 친구 후새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권력을 두고 부자지간에 싸움을 한다는 것, 그것도 목숨을 건 싸움을 한다는 것은 젊은 아들은 몰라도 늙은 아비로써는 할 짓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압살롬은 무혈입성 쿠데타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싱거운 무혈혁명을 성공한 셈입니다. 지극정성으로 부왕을 섬기던 제사장들이며 외인부대장과 재력가들까지 압살롬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였으니, 이쯤 되면 쿠데타의 맛을 실감하고도 남았을 압살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압살롬은 깊은 생각이란 걸 해 봐야 합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부왕 다윗의 용맹과 기개를 떠올려야 했다는 말입니다.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작은 물맷돌로 무찌른 일에서부터, 자신을 죽이려는 전왕 사울의 집요한 추격에도 건재(健在)하였던 지난(至難)한 역사를 압살롬이 잘 알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겨낼 수 없었던 블레셋으로부터 완전 해방되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터 잡은 다윗왕의 지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터인데, 그는 무혈 혁명을 마냥 기뻐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의 권력자들이 생각하는 한계일지 모릅니다. 보다 냉정하게 승리와 실패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처세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승리의 기쁨에 생략돼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 남은 것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일 밖에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쿠데타를 통한 승리는 오히려 더 깊은 파멸로 빠져드는 지름길이 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읽어내는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으리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야말로 역사의 지렛대를 수평에서 오른 쪽으로 또는 왼쪽으로 기울게 하실 분이심을 말입니다.
3. 오늘 저녁엔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