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 / 왕상 9:1-9.

박성완 2019. 10. 1. 01:03

묵상자료 6711(2019. 10. 1. 화요일).

시편 37:34-37.

찬송 5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돌아보는 사물에게 말 걸기. 오늘의 사물은 <육교>입니다. 그 사무실 앞에는 육교가 하나 있습니다. 유난히 가파르고 낡고 높은 육교이지요. 오르내릴 때마다 불안감마저 드는 육교입니다. 그런데 그 육교를 경계로 사무실 쪽과 길 건너편의 음식점들이 정 반대입니다. 사무실 쪽으로는 미안하지만 맛도 없는데, 값은 비싼 음식점들뿐이지요. 하지만 육교를 건너서 조금만 걸어가면, 맛도 있고 값도 싼 음식점들이 즐비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맛이 있고 값싸도, 높은 구두를 신고 날마다 가파르고 낡은 육교를 오르내리는 것, 나름 꽤 큰 고역입니다. 그래서 때론 오직 육교 때문에 사무실 쪽에서 비싸고 맛없는 점심을 먹기도 하지요. 저 육교 좀 없애고 신호등 좀 세워주면 안 되나,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요즘 육교를 없애고 신호등을 설치하는 곳들 많아졌지요. 그런 곳들마다 시야며 주변이 갑자기 얼마나 훤하고 시원한지, “여기가 이런 곳이었나!” 새롭게 감탄하게도 됩니다. 육교를 없애는 대신 예술작품에 가깝게 바꾸는 곳도 많지요. 나무로 만든 아치형 육교며, 교차로 네 곳 어디에서나 오를 수 있는 둥근 원형 육교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폭포수가 쏟아지기도 하고요, 긴 누에 형상을 한 육교들은 말 그대로 하나의 예술품에 가깝지요. 밤이면 불빛들로 특히 더 아름다워서, 육교 야경을 구경 하러 일부러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육교들에서는 오르내리기의 힘겨움이, 오히려 도시 속 예술적인 산책의 즐거움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냥 건너기에는 불가능한 곳의 건너가는 것의 의미, 이편에서 저편으로 연결되고 만난다는 것의 의미까지. 새삼 신호등이 걸린 횡단보도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육교를 올려다보게 되네요. <KBS FM 출발과 함께. 2010. 9. 27 방송>

 

2. “야훼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다(1-9)”을 읽었습니다. 솔로몬은 또 한 번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솔로몬과는 아주 다른 꿈이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제 의식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단서(端緖)를 찾았으니 말입니다. 저는 여전히 쓸데없는 걱정들과 근심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께 계시를 받는 꿈을 또 꾸었으니 말입니다. 오늘 꿈은 지난번 기브온에서의 꿈과는 사뭇 다릅니다. 축복과 은총에 방향성을 둔 게 아니라, 오히려 저주 쪽으로 기운 듯한 느낌이 강한 때문입니다. 물론 조건부이긴 합니다만. 솔로몬의 아비 다윗처럼 하나님께 충성스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과 예배를 지키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길 경우에는 주저 없이 버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다시금 우리는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무조건 이해하고 무조건 사랑하고 무조건 용서하는 그런 관계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격적인 관계, 지정의(知情意)를 갖춘 관계만이 지속 가능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부버의 말처럼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그것>의 관계라면 일찍 끊어버리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을지 모릅니다. 우리들 인간의 관계 뿐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인격적이어야 할 이유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른바 <쉐마 교리> 역시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너무 늦었을지 모릅니다. 인격적인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당연히 사랑하고 지켜주셔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헛웃음이 날 뿐입니다. 부모님이나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감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