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쉐마 교리가 절실한 이유. / 왕상 18:41-19:8.

박성완 2019. 10. 12. 00:11

묵상자료 6722(2019. 10. 12. 토요일).

시편 39:9-11.

찬송 41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19231027일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시절부터 그림과 조각에 관심이 많았고, 피아노와 클라리넷 연주에도 뛰어났지요. 그러면서 재즈 음악에 열광하기도 했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미술학부에 다닐 때는 피카소를 좋아해서, 주로 입체파나 추상화 풍의 그림을 공부하고 그렸습니다. 그러다 2차 대전을 앞두고 유럽으로 징집됐는데,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프랑스에 남아서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아버지의 병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서 아버지를 간호하고 대학 강사 등의 일을 하면서 이사벨 윌슨과 결혼 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도 낳았지요. 1951년 스물여덟 살엔 마침내 고대하던 첫 개인전도 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전 후에 뉴욕 타임스에서는 그를 이렇게 평합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형편없는 예술가 중의 한명이다. 정말 심한 평가였지요.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곤 여전히 입체파와 추상화를 오가는 그림들을 열심히 그렸지요. 그러다가 바로 저 유명한 일화, 디즈니 만화 미키마우스를 좋아했던 아들이 아버지는 이렇게 못 그리지요?” 라는 아들의 한 마디 때문에 만화를 이용한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만화는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엔 더더욱 예술로는 전혀 취급받지 못하던 대중 오락거리였지요. 그런데 그런 만화를 그대로 미술 작품에 가져오면서, 리히텐슈타이은 대중 예술과 순수 미술의 벽을 허무는 팝 아트의 세계를 한꺼번에 펼쳐버리기 시작합니다. 그 때 리히텐 슈타인의 그림에 처음 도입한 기법은 벤데이 도트 였습니다. 벤데이 도트 인쇄 전문가인 벤데이가 개발했는데, 인쇄를 하면 나타나는 그물코 같은 점들을 가르치지요. 그래서 우리 이름으로는 망점이라고 합니다. 그런 망점 벤데이 도트를 활용했으니,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그가 의도했던 대로 만화처럼 인쇄기로 인쇄된 것처럼 느껴지지요. 그래서 별로 힘들이지 않은 그림같이 보이지만, 실은 보통의 붓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3. 19. 방송>

 

2. “가뭄이 끝나다(18:41-46)”엘리야가 호렙산으로 들어가다(19:1-8)”을 읽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과의 기도대결에서 압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뭄을 이기는 비를 내리지 못한다면, 참된 승리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대결 때보다도 더 애 간장을 태우며 엘리야는 기도했음을 첫 단락에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서쪽 하늘에서 비구름이 몰려와야 하, 엘리야는 일곱 번이나 시종에게 갈멜산 꼭대기에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대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엄청난 비가 쏟아져 아합은 이스르엘 강을 건너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합 왕의 얘기를 전해들은 이세벨 왕비는 노기가 충천하여 엘리야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내일 이맘때까지는 반드시 죽이겠다고 말입니다. 36개월의 가뭄이 끝이 나도록 크게 공헌한 엘리야에게 상은 못 내릴망정 죽이겠다는 막말은 대세를 제대로 파악치 못한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엘리야가 아세라의 눈을 피해서 광야 길로 들어서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엘리야와 우상의 제사장들 850명의 기도 대결에서 누가 참 신인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을 텐데도, 어떻게 엘리야가 죽어야 할 처지로 뒤바뀔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6개월의 가뭄을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면 한 순간에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돼야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40년이란 길고 긴 세월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낮엔 구름기둥 밤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먹이시고 돌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체험했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가 가능한지 말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너무 크고 넓고 깊어서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도록 기억 속에 생각 속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허망하게 쉽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무지나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잘 알고 있고 분명히 깨우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찌하여 유대인들은 쉐마(6:4-9)라는 교리를 만들어 쉬지 않고 되풀이해서 가르쳤을까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밤낮으로 어디에서든지 되풀이 되풀이해서 우리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그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외우도록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