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설교학교

월요설교학교 일곱번째 교실.

박성완 2019. 10. 25. 08:09

감격으로 설교하기.

 

1. 서론. 

   저는 목사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설교자 자신이 말씀에 감동을 받은 후, 그 감동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적인 설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다짐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젊은 목사의 객기일 수 있다. 실제로 제 자신의 설교에서 그런 감격을 느끼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그동안의 고뇌와 자기 연민의 시간은 참으로 힘들었다. 뒤늦게 깨달은 것은 기본의 문제였다. 설교자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제대로 그리고 수도 없이 했어야 했는데 그걸 생략했던 것이다. 신학교 교수직을 끝내기 몇년전 설교학 개론과 설교 실습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이다. 설교단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참으로 가볍고 설레는 기쁨을 조금씩 느꼈으니 말이다. 오해없기를 바란다. 이 말은 설교를 자신있게 하게 되었다거나, 설교 준비가 힘들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언제나 설교 준비는 여인들이 산고를 치르는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 다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하러가는 전령의 발걸음이 되었다는 깨달음이었다. 

 

2. 명사들의 설교에 대한 생각. 

    저는 <설교의 실제>를 강의할 때는 적어도 2-3시간은 명사들의 설교 연구를 소개하였다. 오늘은 명 설교자로 이름났던 3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분들의 설교에 대한 이해는 설교자들이 깊이 생각해볼 많은 공간을 준다고 믿는다.

 

가. 곽선희 목사(서울 소망교회 담임목사 역임).

   첫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재해석이다. 성경의 문맥을 바로 이해한 후, 가장 효과적인 언어로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둘째, 설교자는 성경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목사가 성경을 떠나면 교인은 목사를 떠난다." 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설교의 생명력은 성경적일 때만 가능하며, 성경말씀을 바르게 전하면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셋째, 성경은 옛날 말씀이지만, 여전히 현대에도 살아 숨쉬고 역사하는 말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청중과 아이 컨텍을 해야 하고, 흥미를 유발시켜야 한다. 비몽사몽간에 은혜를 체험케 할 수는 없다. 

   다섯째, 설교를 메모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강의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섯째, 부흥사는 가볍고 신학자는 무겁다. 서로 배우면 좋겠다. 쉽고 친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가라.

 

나. 하용조 목사(서울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역임).

   첫째, 참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전달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설교의 유형은 주석설교, 본문설교, 주제설교, 인물설교, 강해설교 등이 있는데, 성경 본문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대로 강해하여 자신의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강해설교가 가장 바람직하다.

   셋째, 강해설교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전달할 수가 있고, 설교자와 청중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사랑하게 할 수 있다. 또한 평생 반복하지 않는 설교를 할 수 있고, 구체적인 삶에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다.

   넷째, 강해설교는 본문의 선택, 본문 연구와 이해, 성경해석과 적용이라는 순서로 준비할 수 있다.

   다섯째, 본문 중심이어야 하며, 알아듣기 쉬워야 한다. 일상용어로 표현하며, 절실함과 긴박성,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한다. 

   여섯째, 조심할 것은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설교보다, 자기 생각을 강조하거나 청중의 삶과 무관한 것은 곤란하다.

 

다. 임영수 목사(서울 영락교회 담임목사 역임).

   첫째, 설교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말씀이다. 설교 현장에서 제대로 들려지도록 시간적 차이, 문화적 차이, 언어적 차이를 해결하는 것이 설교자의 임무이다.

   둘째,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설교자가 구상한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에 맞도록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는 해석이 필요하다.

   셋째, 설교자는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고 선포되는 곳에는 항상 성령께서 일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넷째, 설교를 흥미위주로 끌고 가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시사나 신변잡기, 그리고 흥미있는 예화를 삽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화 등은 성경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설교자의 억양이나 제스처, 시각적 표현과 방송 영화 등은 설교의 전달이라는 차원에서 강조가 되고 있으나, 역기능도 있다. 가장 중요한 전달의 요소는 설교자의 진실성과 성실성이다.

   여섯째, 설교자는 기능공이 아니라,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해야 한다. 좋은 설교는 좋은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설교자는 먼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청중들로 하여금 오늘 하나님을 만나뵈었습니다 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위의 세분의 설교에 대한 생각은 경청할 내용들이다. 물론 오순절 계통의 목사들 처럼 성령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부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어서 다행이나, 역시 성령의 역사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숙제로 남는다. 곽 목사님과 임 목사님처럼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겠다. 

 

3. 결론.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불만을 품을 수 있다. 요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가기도 했다. 하나님의 넓고 큰 사랑을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언제나 높음처럼, 우리 인간들의 생각보다 높고 넓으신 것을 깨닫고 용감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 경지에 이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기쁘고 감격적일 수 있다. 그래서 설교자는 설교단에 오르기 전에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올라갑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요. 주님께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