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신조의 뿌리. / 마 16:13-20.
묵상자료 6756호(2019. 11. 15. 금요일).
시편 48:4-8.
찬송 5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카페는 시내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빌딩 숲속의 여느 카페와는 좀 다릅니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동네의 나지막한 집들 사이로 난 작은 골목 그 끝에 있습니다. 입구에는 화초가 많아서 비록 흙담의 마당 집은 아니어도, 물씬 옛 동네 옛집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카페 안에는 책이 많아서 가져다 읽을 수도 있고, 직접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가장 크게 특징짓는 건 여러 가지 공부 모임을 개설했다는 점입니다. 철학에서부터 인문학 영어 고전 읽기 모임과 불어 공부모임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공부모임까지 많은 모임을 열었습니다. 그 중 청소년 인문학 교실에서는 한 글자로 된 것들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길 일 몸 집 돈 품 눈 혹은 잠 꿈 물 불 같은 식이지요. 이것이 끝나면 사랑 평화 철학 역사 공부 같은 두 글자 인문학 교실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한 글자 공부의 경우에는 강의 내용을 책에 담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라는 제목의 집을 주제로 한 책이지요. 거기에는 건축가 등 여러 집 전문가가 쓴 특이한 내용이 많습니다. 한 흙집 전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아토피의 어원을 아시나요? 그리스어 아토포스(atopos/이 단어는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어원이다.)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아, 아이들이, 토, 흙을, 피, 피해서 생기는 병이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년 11월 8일 방송>a.
2. “베드로의 고백(13-20절)”을 읽었습니다. 베드로를 무식하고 저돌적인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뒤바꾼 것을 오늘의 본문 그의 고백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 인간에게 있어서 고백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백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사랑을 입 밖으로 꺼내면 사랑고백이 되고,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사상을 입밖으로 꺼내면 사상 고백이 되며, 마음깊은 자리에 있던 신앙을 입밖으로 꺼내면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하는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감출 것이 없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때문입니다. 오늘 그런 고백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야기입니다.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 주님은 제자들과 한적한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가이사랴는 로마의 총독부가 위치하는 곳인데 반해서, 빌립보의 가이사랴는 갈릴리 해변에서 20마일 북 헐몬산록에 위치하는 곳으로, 주님은 그곳에서 당신에 대해서 사람들이 하는 말과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질문하셨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갖아 하기 힘든 말이 있는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지체없이 대답을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일화는 훗날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는 말로 <사도 신조/사도 신경>의 뼈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는가를 성경적인 바탕에서 가장 압축적으로 요약 표현한 것이 신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차제에 신학의 유용성에 대해서 교회 지도자들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신학의 부재(不在)가 자구(字句)에 매달려 성경을 혼잡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근본주의자들이 생겨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신앙 고백의 무게를 생각하며 베드로가 짊어졌던 사도로써의 임무를 칭송해 마지 않습니다.
3. 어제 김장담그기를 아내와 둘이서 마쳤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