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주님이 중심에 계시는 모임인가? / 마 18:10-20.

박성완 2019. 11. 22. 00:07

묵상자료 6763(2019. 11. 22. 금요일).

시편 49:16-20.

찬송 1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청미래 덩굴은 잎보다 뿌리인 것 같습니다. 뿌리 곳곳에 혹같이 생긴 덩이뿌리 괴근이 있습니다. 이 괴근은 영양분을 저장하기 위해 크고 뚱뚱해진 뿌리로 안에 녹말 성분이 많이 들어 있지요. 그러니 흉년일 때 먹는 구황식물입니다. 뿌리를 캐어 잘게 썬 후, 여러 날 물에 담가 쓴 맛을 우려낸 후에, 다른 곡식과 섞어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옛날에 산으로 도망친 선비들이 청미래 덩굴나무 뿌리를 캐어 먹고 살았는데, 그 양이 넉넉하다고 해서 우여량, 산에 있는 기이한 양식이라고 해서 산귀량, 신선이 남겨준 양식이라고 해서 전후량 이라고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 뿌리가 또 대단히 훌륭한 약재인 것이 중국에 이런 얘기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남편이 매독이란 몹쓸 병에 걸려 죽어가자, 남편이 너무 미운나머지 아내가 남편을 산에다 버리고 왔는데, 허기진 남편이 청미래 덩굴 뿌리를 캐어 먹다가 몹쓸 병이 나아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평생 잘하고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마을에서는 산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산귀량이라고 부르다고 하지요. 끝에 가서 갑자기 뾰족해 잎은 떡을 싸먹거나 차를 달여 마시고, 혹이 달린 뿌리는 배고프거나 아플 때 먹고, 어린 순은 나물로 묻혀 먹고, 열매는 겨울 양식으로 새들이 먹거나, 심심한 아이들이 오며가며 따먹거나, 아니면 새빨간 열매 송이를 줄기째 꺾어다 꽃꽂이로 쓰거나. 그 유용한 쓰임새가 덩굴덩굴 이어지는 청미래 덩굴이 전합니다. “명색이 또 덩굴이라 빽빽하게 얽히고설키니 보니, 다른 동물들이 얼씬 거리기가 좀 마땅치가 않나봅니다. 그러니 또 겨울엔 꿩이나 산토끼들에게 숨어 지낼 말한 되어 준다나요. 아무튼 이놈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모릅니다. 주기만 하고 받을 생각 안하니 쌓이는 건 인기 뿐. 몰래 감춰둔 쓸모가 하나 더 있긴 한데요. 요금 좀 감춰둘랍니다. 하지만 푸른 제 미래를 위해서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61121일 방송>b.

 

2. “잃은 양 한 마리(10-14)”, “형제가 죄를 지으면(15-18)” 그리고 내 이름으로 모인 곳(19-20)”을 읽었습니다. 제가 1983년 미국에서 첫 번째로 <셀프 스터디 바이블>이란 성경을 보았습니다. 요즘 우리들이 흔하게 볼 수 있는 제목이 붙고, 이런저런 해설이 붙은 성경 말입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때부터 성경을 문단으로 만들고 그 제목까지 붙여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성경에는 다양한 주제들의 말씀이 소개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은 그 다양한 말씀들을 다 취급하는 것 보다는, 한 가지 주제에 충실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설교자가 한 주제의 본문을 토대로 설교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 일화와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을 함께 취급하게 되면, 짧은 시간에 묵상하기에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움을 겪을 것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단락 내 이름으로 모인 곳(19-20)”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란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란 예배가 가장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리스도인의 친교의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제외하고는 동기와는 달리 자칫 다른 목적지향적인 모임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는 다양한 모임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선교나 봉사 혹은 전도와 같은 기도회가 포함된 모임이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임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교회는 실업인 회, 법조인 회, 교사 회, 합창단과 유아맘 회 각종 악기 연주반 등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임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에서 상당히 빗나가기 쉽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명합니다. 그 모임의 중심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의 또 다른 욕망충족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는, 언제나 주님이 중심이 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구성원들을 위한 이익추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높이는 그런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