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누리고 있는 축복을 깨달을 수 있기를. / 마 20:29-34.

박성완 2019. 11. 30. 00:01

묵상자료 6771(2019. 11. 30. 토요일).

시편 51:4-6.

찬송 5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목재만 단단한 나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무 자체가 단단함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1790년 정조 14년에 이경화가 간행한 의서 <광제비급>, 마가 목으로 술을 담가 먹으면 36가지 중풍을 모두 고칠 수 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풍증과 어혈을 낫게 하고, 늙은이와 쇠약한 것을 보하고, 허리 힘 다리맥을 세게 하고, 흰 머리를 검게 한다. <동의보감>에는 또 이렇게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에 빨갛게 익은 열매를 따서 말린 다음, 달여서 먹거나 술을 담가 먹습니다. 단단한 목재도 내놓고, 몸을 천하무적으로 만들어 주는 열매까지 내 놓았으면 충분한데, 뭐가 아쉬운지 마가 목은 껍질까지 내놓습니다. 성인병에 좋다는 것이 알려져서 산에 가보면 껍질이 벗겨진 마가 목들이 참 많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게 되지요. 우리 입장에는 지팡이도 생기도 몸에 좋은 술도 생기고 약재도 생기니 이런 복덩어리가 없는데, 마가 목 입장에서는 어느 한 계절 편히 넘어가지 못하는 수난시대만 이어집니다. 그래서 높은 곳으로 피난을 간 모양입니다. 자생지가 1,000m에서 1,300m 쯤 되는 고지대입니다. 꽃이 하얀색인데 작고 귀여운데다 다발로 피어서, 꽃필 때도 아름답지만 붉은 단풍이 질 때도, 붉은 열매를 달고 있을 때도 아름다워서, 겉과 속 모두가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소리 소문 없이 단단하고도 아름다운 마가 목 나무가 전합니다. “제가 소리 소문 없이 단단하고 강한 이유는요. 그래야 곤충이나 사람들이 저를 찾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무라 뿌리를 내린 곳에서 꼼짝 달싹도 하지 못합니다. 가만히 서서 다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내 주지 않고 찾아와주길 바라는 것은, 뻔뻔하고 염치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61128일 방송>b.

 

2. “여리고의 두 소경(29-34)”을 읽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는 1983년 여름이었는데, 구약 학자의 안내를 받았는데 관광 안내원 역시 이스라엘 역사에 자부심을 갖는 50대 남성이었습니다. 여리고 가는 험한 길은 강도의 출현이 있을 법한 곳이라 너스레를 떨었고, 돌덩이 몇 개를 줄지어 늘어놓은 곳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들렸다는 여관 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에서 뽕 나무라고 가리키는 큰 나무는 세리장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라면서 지어낸 얘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여리고를 추억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맹인이 등장하는데 어찌나 큰 소리로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말을 하자, 예수님 주변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나무랐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찾아온 두 번 다시없을 기회를 놓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부르셨고, 당신께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셨고, 그들의 눈이 떠져서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저는 평소에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시각 장애인을 꼽습니다. 캄캄한 세상을 사노라면 코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지 모를 두려움으로, 손에 쥔 것은 물론 주머니 속까지 샅샅이 뒤져 빼앗아 가도 아무 방어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인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건강한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감상하며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최상의 행복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나 깨나 오매불망 단 한번 만이라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입니다. 평생 三重苦를 지니고 살았던 헬렌 켈러는 자신의 3가지 소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 둘째, 새벽에 밤이 낮으로 바뀌는 거룩한 장면을 보는 것, 셋째, 거리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보통의 사람들이 모두 누리고 살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살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소망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누리고 있는 축복들을 깨닫는 게 아닐까요?

 

3. 11월 마지막 날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